최동훈 감독의 '도둑들'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국내에서 모두 언론배급시사회를 갖고 베일을 벗었다. 두 영화 모두 긍정적인 평들이 주를 이뤄 사람들의 기대감을 상승시키는 중. 올 여름 극장가 한(韓)-미(美) 국가대표라고도 불릴 만한 이 작품들은 1주일 차로 개봉해 맞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아바타'와 '전우치' 때처럼 윈-윈 효과를 기대하거나 쌍끌이 흥행 구도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고, '믿고보는' 감독들의 웰메이드 오락물이 두 편이나 되기에 예비 관객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이 두 작품의 막상막하 대결포인트 세 개를 짚어봤다.
○ 스케일 : 블록버스터의 끝판왕 vs 이런 韓영화는 없었다

사실 두 영화의 절대적인 제작비 비교는 의미가 없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제작비는 2억 5000만 달러로 한화로 계산하면 약 2900억원 이상이다. '어벤저스'의 제작비(2억 2000만 달러, 약 2500억 이상)를 넘는 수치이자 '도둑들'의 제작비인 140억원의 10배가 훌쩍 넘는 돈이다.
베일을 벗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이런 천문학적인 제작비만큼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164분의 러닝타임에서 IMAX 영상은 무려 72분. CG를 배제한 실제 세트와 대도구의 사용, 1만여명의 엑스트라가 참여한 가운데 뛰어난 화질과 깊이있는 영상은 리얼리즘인 동시에 그 자체로 환상이다. 여기에 오프닝을 장식하는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촬영된 베인(톰 하디)의 공중납치 장면, 배트모빌과 배트포드, 그리고 배트맨의 최신 모델인 '더 배트'(The Bat) 등의 영화 속 코스튬과 신무기는 그야말로 상상력의 결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둑들'은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 중 처음으로 대대적인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한 작품이다. 영화의 절반이 홍콩과 마카오 뿐 아니라 서울, 부산 등 아시아 대표 도시를 오가는 대규모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카지노 리조트 시티 오브 드림즈의 전폭적 협조에 따라 실제 마카오 카지노 로케이션 촬영으로 범죄의 향기가 흠뻑 풍기는 도시의 화려하고도 이국적인 향취를 물씬 드러낸다.
각 도시의 화려한 경관과 쇠락한 도시 뒷골목의 이중적인 모습은 극에 리얼함을 더하며 전에 보지 못한 홍콩 느와르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혼합된 한국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후반부 주인공 김윤석의 대담한 와이어 액션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분명 이런 한국영화는 없었다.

● 배우-캐릭터 : 쫄깃함 vs 묵직함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도둑들'은 둘 다 감독들의 '사단'이라고 불릴만한 패밀리들이 함께 출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둑들'은 10명이나 되는 배우가 겹침 없이 각자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잘 살린 것이 장점이다. 특히 한국배우들은 그야말로 한국영화계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톱스타들로 개봉 전 이 배우들의 비중 배분이 어떻게 될 지도 관심을 모았다. 뚜껑을 연 '도둑들'은 비중에 대한 얘기가 그닥 필요없을 만큼 싱싱한 캐릭터들의 승리다.
최동훈의 영화 역사와 함께한 김윤석을 필두로 '타짜'의 김혜수가 함께했고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과 중견배우 김해숙, 중국배우 임달화 등이 가세했다. 김윤석은 믿음직스럽고 김혜수는 아름다우며 이정재는 야생마같다. 전지현은 팔딱팔딱 스크린을 휘젓고 다니고 김해숙과 임달화의 러브스토리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김수현은 '해를 품은 달' 때보타 풋풋하다.
특히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그렇듯이 언어유희를 즐기는 배우들의 '말 맛'이 쫄깃하다. 이는 어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따라갈 수 없는 '도둑들'만의 장점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인 크리스찬 베일을 필두로 '인셉션'에서 함께 했던 조셉 고든-레빗(존 블레이크 역)과 마리옹 꼬띠아르(미란다 테이트 역), 전 편에 출연한 게리 올드만(짐 고든), 리암 니슨(라스 알 굴 역) 등이 출연한다. 여기에 새 악당 베인 역 톰 하디와 캣우먼 셀리나 카일 역 앤 해서웨이 등이 새롭게 합류했다.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에 놀란의 또 다른 영화 '인셉션'이 주인공들까지. 영화는 놀란표 사람들로 가득하다.
'배트맨' 시리즈는 배트맨 못지 않게 강력한 악당 캐릭터가 인상적인데, 톰 하디가 분한 이번 영화의 악당 베인은 마스크를 쓴 인믈로 폭발적인 육체적 힘을 과시하는 용병이다. '다크나이트'의 조커(히스레저)에 비해 소름 끼치는 잔상과 카리스마는 약하지만 무게감은 그래도 상당한 편이다. 조커가 무정부주의자였다면 베인은 테러리스트. 배트맨과 베인은 맞딱뜨렸을 때 주로 맨 주먹 몸 싸움을 벌인다. 조커와는 두뇌대결이 강렬했다면 베인과는 그야말로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힘 대결이다.
'다크나이트'가 배트맨 보다 조커에 좀 더 무게 중심이 기울어졌다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브루스 웨인의 여정을 쫓아간다.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후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웨인의 여정은 배트맨 캐릭터의 서곡이다. 아, 조셉 고든-레빗은 故 히스 레저의 닮은꼴로도 유명하다. 영화에서 배트맨의 조력자 형사 존 블레이크로 분해 꽤 큰 비중을 자랑하는 그는 그래서 묘한 그리움을 안기기도 하다.

○ 이야기 : 오락물 이상의 블록버스터 vs 품격있는 오락물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다크나이트' 이후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배트맨(브루스 웨인, 크리스챤 베일)이 사랑했던 여인과 검사 하비 덴트의 죽음으로 고립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상태에서부터 시작한다. 배트맨이 필요없는 고담시의 사람들, 하지만 영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위급 상황이 닥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폐해진 웨인은 다시 배트맨의 수트를 입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전편 '다크나이트'보다 상황 반전의 묘미나 배트맨과 악당의 싸움이 비교적 덜하고 스토리 라인이 단조롭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락물 이상의 블록버스터인 배트맨 프리퀄시리즈의 완결편이 되기에는 손색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화는 이웃에게 손 내민 작은 행동을 통해 평범한 사람도 영웅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끔찍한 유년 시절 의 경험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트맨은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에너지로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나 악당을 제압하고 배경이 되는 고담시는 테러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미국사회와 겹친다. 인간의 본성적 악과 반대로 인간에 대한 믿음, 고행을 거쳐 진정한 히어로로 다시 태어나는 배트맨의 모습은 단단한 의미를 곱씹게 한다. 그 탄생 과정이 다른 슈퍼이허로들로다 비교적 명확하지 않았던 배트맨이었기에 이런 프리퀄 3부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도둑들' 역시 케이퍼 무비 장르임에도 한 방의 클라이막스가 있기 보다는 도둑들의 도둑질이 조근조근 스피디하게 연결되며 그 안에 멜로, 추격극,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가 변주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쉽게만 읽힐 오락물이 아니라면 '도둑들'은 품격있는 오락무비다.
단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경우는 전편인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챙겨보고 가지 않으면 온전한 재미를 못 느낄 것이다. '도둑들'은 그 점에서는 한결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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