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이후 무려 17년 만에 광주 무등구장에서의 불펜피칭이다. 선동렬 KIA 타이거즈 감독이 오랜만에 치른 불펜피칭을 마치고 겸연쩍은 듯 그러나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선 감독은 오는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한일 레전드 매치서 선발로 예고되었다. 선발 투수들이 대개 등판 이틀 전 불펜피칭을 하는 것처럼 선 감독도 무등구장 불펜에서 씽씽투를 선보였다. 캐치볼을 제외하면 22구를 던졌다. 놀랄 만한 일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현역 은퇴한 지 13년이 된 선 감독이었으나 ‘국보 투수’다운 면모가 물씬 풍겼기 때문. 직구는 물론 특유의 떨어지는 슬라이더도 포수 미트를 향해 매섭게 꽂혔다. 이를 지켜보는 선수들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는 것이 구단 관계자의 후문.

전력분석팀 측도 “육안으로 봤을 때 130km대 초반 정도까지 나오지 않았나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전날(17일)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던 선발 서재응은 “감독님, 슬라이더 저 주시면 안됩니까”라며 슬라이더 무브먼트에 매료된 듯 호소하기도 했다.
“윤석민 스파이크를 신어서 그런가. 잘 되는 것 같다. 120km대 후반이 아닐까”라며 껄껄 웃은 선 감독은 “일본에서 변화구를 던질 때 원바운드 유인구성으로 던지던 버릇이 남아서 그런지 스트라이크 존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라며 겸손하게 투구를 자평했다. 그러나 밝은 표정에는 감이 좋아 레전드 매치서도 명성에 걸맞는 투구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2006년 올드스타전 이후로 스파이크도 처음 신었고 불펜피칭도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해태(KIA의 전신)에서 1995년까지 뛰었으니 17년 만에 무등구장에서 불펜피칭을 한 셈이다. 오늘 선수 등록 한 번 해볼까”(웃음).
마침 이강철 투수코치가 선 감독 근처를 지났다. 선 감독은 웃으며 “이 코치, 오늘 나 마무리로 대기할까”라며 농을 던졌다. 그러자 이 코치는 “마무리로 임명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옅게 웃으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순위 경쟁 속 스트레스도 극심했을 선 감독은 오랜만에 굵은 땀방울과 함께 환한 웃음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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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