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거 때문에 태인이를 좋아하잖아".
지난 19일 대전구장. 한화와 원정경기 앞둔 삼성 타자들이 프리배팅에 한창이었다. 그때 내야수 채태인(30)이 우측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다. 이를 바라본 삼성 류중일(49) 감독은 무릎을 치며 "내가 저거 때문에 태인이를 좋아한다"며 시즌 개막전이었던 지난해 4월2일 광주 KIA전을 떠올렸다.
류중일 감독의 사령탑 데뷔전이었던 이날 경기에서 삼성은 KIA 선발 윤석민에 막혀 8회초 들어가기 전까지 0-2로 끌려다녔다. 하지만 1-2로 추격한 8회 1사 만루에서 이전 3타석 모두 삼진으로 물러난 채태인이 곽정철의 직구를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만루홈런을 작렬시켰다. 류중일 감독은 오른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고, 감독 데뷔전을 6-2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이날 프리배팅도 마침 그때 그 홈런처럼 우측으로 크게 날아갔다. 류 감독은 "그 홈런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그때 이후 태인이가 쳐줄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고 말했다. 류 감독에게 아주 중요한 경기에서 채태인이 결정적인 홈런을 터뜨렸고 그 잔상이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류 감독의 채태인 애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심지어 코치들도 이를 느끼고 있다. 류 감독은 "코치들이 한 번은 나에게 '감독님은 태인이를 너무 좋아하신다'고 하길래 '그래 나 태인이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는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이 삼성이 복귀할 때에는 혹여라도 채태인이 상심할까 "주전 1루수는 채태인"이라며 힘을 실어준 것도 다름 아닌 류 감독이었다.
류 감독은 "태인이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며 한마디했다. 마침 채태인이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덕아웃을 지나가자 "저것 봐 잘 모른다니까"라며 "예전에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2년 만에 도망가버렸다. 그 다음부터 야구를 잘 못하더라"고 면박을 줬다. 그러자 채태인도 "그런 것 같습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태인은 공교롭게도 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해부터 부진했다. 지난해 53경기에서 타율 2할2푼 5홈런 28타점에 그친 그는 올해도 45경기에서 타율 2할3푼2리 1홈런 8타점 불과하다. 하지만 류 감독은 "태인이가 살아나야 한다. 좌타자이지만 좌투수 공도 잘 친다"며 "채태인과 배영섭이 자리잡아야 한다. 라인업이 자주 바뀌면 팀이 약해 보이고 선수들도 모두 반쪽이 된다. 주전이 확실하게 라인업에 있어야 팀이 강한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선수가 주전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뒤늦게 시력 저하를 호소해 류 감독의 미간을 찌푸리게 한 채태인이지만 아직까지 지난해 개막전 만루홈런의 잔상이 류감독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과연 그 홈런의 유효기간은 언제일까. 그전까지 채태인이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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