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레전드들이 총집결, 2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2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가 5-0, 한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30년 프로야구 역사의 한국과 70년 프로야구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고 선수들이 모인만큼 현역에서 은퇴한 지 20년이 지난 선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열정만은 어느 올스타전보다 뜨거웠다.
한일 최고의 투수인 선동렬과 사사키 가즈히로의 대결이 가장 주목 받았지만 현직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은퇴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스타들이 총 출동, 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날 그라운드에 오른 선수들 모두 남몰래 철저히 실전 준비에 임하며 상당한 수준의 경기력을 자랑했다.

선동렬은 여전히 국보급 투수였고 올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은퇴한 이종범은 MVP수상과 함께 팬들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전달했다. 양준혁은 현역시절 자신이 모토로 삼고 있었던 ‘전력질주’의 모습을 이날도 그대로 보여주며 부상까지 당했다. 일본 무라카 쵸지는 63세의 나이에도 가장 다이나믹한 투구폼과 130km에 가까운 직구로 모든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이처럼 이날 그라운드를 밟은 선수 모두 나이를 잊고 투혼을 불살랐다.
팬들도 오랜만에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 간직했던 스타들을 꺼내볼 수 있었다. 실제로 이날 잠실구장에서는 올스타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 중 전설들이 현역 시절 입었던 예전 유니폼을 그대로 공수해온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팬들은 각자의 영웅이 그라운드 위에 들어설 때마다 환호를 보냈고 영웅들은 현역시절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애썼다.
한국야구와 일본야구는 1990년대 양국 프로리그 최고 선수들의 맞대결인 한일 슈퍼게임을 통해 가까워졌다. 최근에는 한국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꾸준히 일본에 진출하고 있고 한국 팀에는 일본인 지도자의 수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일본 선수들도 한국에서 외국인 선수로 영입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번 레전드 매치로 인해 양국의 야구교류가 더 활발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밝힌 셈이다. 아직 다음 레전드 매치의 시기와 장소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2년 후 일본에서 열릴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점도 있었다. 일단 티켓 가격이 두산과 LG의 잠실 홈경기보다 비쌌다. VIP석과 테이블석은 2만원, 가장 대중적인 자리인 블루지정석과 레드지정석, 옐로우지정석은 각각 1만원, 8천원, 5천원으로 더 비쌌다. 물론 페넌트레이스 경기보다 긴장감이 떨어지고 수준 높은 대결에 대한 기대치도 낮지만 이날 평소보다 적은 관중들이 잠실구장을 찾은 것은 높은 티켓 가격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기도 안 좋았다. 현역 감독과 코치들이 한국팀의 주축이 되면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시즌 중 레전드 매치에 대비해야했다. 지도자가 선수 관리가 아닌 실전에 대비해 자신의 몸을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팀에는 일본 프로야구에 몸담고 있는 현역 지도자는 소프트뱅크 2군 타격코치인 후지모토 히로시 밖에 없었다. 실제로 많은 지도자들이 시즌 후 이런 이벤트가 있다면 더 좋은 몸 상태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아쉬워한 바 있다.
양 팀의 연령대가 차이 나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경기인 만큼 한국팀이 선수수급에 있어 수월했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팀이 일본팀 보다 연령대가 한 층 낮았다. 앞으로 한일 레전드 매치의 의미를 키워가려면 양 팀이 연령대에 맞춰 선수를 선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년 후 레전드 매치가 열린다면, 그 때는 보다 많은 볼거리와 적절한 시기, 그리고 더 흥미 있는 승부를 펼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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