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名唱), 참 대단한 경칭이다. 한 평생 한 길을 파, 아무나 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이들에게 붙이는 경어다. 애초에 외롭고 힘든 길인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오랠 줄이야….
경기민요 이수자 이자 국악 명창인 안소라 씨(47)는 요즘 시골 장터를 자주 왕래한다. 그나마 무대가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안 씨에 대한 경기민요 ‘명창’의 칭호는 지난 2001년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공인됐다. 경기민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인 이은주 선생으로부터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사사를 받았다.
강원도 하고도 정선군. 지자체 중에서도 새롭게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고유의 전통을 문화상품화 하는 데 열성적인 곳이다. 지난 2010년 이곳에서 작은 행사 하나가 열렸다. ‘정선아리랑제’의 일환으로 기획 된 '전산옥 선발대회'였다.

'전산옥'은 정선에서도 이름난 주막(주막)이다. 길 가는 나그네들에게 주막은 주린 배를 채우고 쌓인 여독을 풀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잠시의 인연을 벗 삼아 오가는 이들과 이런 세상, 저런 세상 인생사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다. 그 곳엔 으레 손맛 좋고 입심 좋은 주인장, 주모가 있다. 권주가 한 자락, 소리 한 마디 엮어 내는 것은 이름 그대로 '기본 가락'이다.
그런 주모를 선발하는 대회가 바로 '전산옥 선발대회'다. 안소라 명창은 제 1회 전산옥 선발대회에서 '진'에 올랐다. 1대 전산옥이 된 것이다. '전산옥 주모'가 된 안 명창은 축하무대에서 멋들어진 춤사위를 선보이고 구성진 노랫가락도 한 자락 뽑아냈다.

그런데 이런 활동상을 이야기하는 명창의 얼굴색이 밝지 못하다. 행사를 폄하해서가 아니다. 국악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씨가 말라버린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안 명창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아직은 젊어 무대가 있다 하면 거리를 따지지 않고 달려갈 힘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안 명창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은 지상파 방송에서 국악인들이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현실이다. 한 때 민속씨름 대회에서 구색을 갖췄던 국악 무대도 요즘은 인기 가수(트로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대중들에게 낯이 익은 인기가수를 앞세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의도는 미뤄 짐작할 만하나 그 덕(?)에 민속 씨름대회에서 트로트 가요를 들어야 하는 모양새는 한복에 샌들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안 명창은 지난 2008년 국악을 대중들에게 좀더 친숙한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큰 모험도 했다. 대중가요 음반을 낸 것이다. "국악이 어려우면 우리가 좀더 쉽게 다가가면 되지요. 그런 의도로 음반을 냈어요. 물론 정통 국악음반은 아니지요. 시쳇말로 '퓨전'이라고나 할까? 국악 고유의 가락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음반을 만들었어요. 그렇게라도 대중들에게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안 명창의 이런 시도에 대한 주위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국악인이 그게 뭐냐'는 핀잔만 돌아올 뿐이었다. 안 명창은 결국 야심차게 시작했던 '퓨전음악'의 시도를 접고 다시 국악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그곳이 소극장이든, 시골장터이든 무대만 열리면 어디든 쫓아간다는 생각이다. "한복을 입고 민요만 부르기로 했어요."
물론, 마음으로 계획하고 있는 작은 꿈은 있다. 디너쇼 같은 작은 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저를 알고 제 음악을 이해해 줄 소중한 분들을 모셔 놓고 제 음악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민요에서부터 가요에 이르기까지 알찬 레퍼토리를 짤 생각이에요. 우리 민요가 제가 부르는 가요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자꾸 다가가야 한다는 제 생각이 담긴 무대를 만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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