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에서 퇴짜를 받기 위해 능청스럽게 “우리 마미”를 연발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그 여자에게 진짜 사랑이 찾아오자 깨끗하게 물러날 줄 아는 남자.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아이두 아이두’에서 조은성을 연기한 박건형(35)은 그렇게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홀라당 빼앗았다.
은성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남자다. 의사인데다가 잘생겼으며, 배려심도 넘쳤고 재치까지 갖췄다. 박건형의 지인도 이런 남자가 어디 있냐면서, 혹여나 은성 같이 완벽한 남자가 있다면 소개를 해달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박건형은 은성처럼 완벽한 남자가 현실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을 표현한다는 그의 신조가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물론 자신도 그런 완벽한 남자라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제가 은성이라는 인물을 바라볼 때 ‘이 천사를 어떻게 표현 하지?’라고 여기거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면 보는 시청자들이 납득하지 못했을 거예요. 은성처럼 완벽한 남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다만 완벽한 남자를 못 만났을 뿐, 전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해요.”
박건형은 ‘아이두 아이두’ 1회에서 맞선에서 만난 김선아(황지안 역)에게 퇴짜를 받기 위해 일부러 마마보이 연기를 했다. 그가 천연덕스럽게 “우리 마미”를 반복해서 내뱉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는 “당시 첫 촬영이었기 때문에 많이 어색했고 창피했다”면서 “워낙 장면이 웃기니까 스태프도 웃었는데 웃는 건지 비웃는 건지 착각이 들었다”고 유쾌했던 촬영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박건형은 이번 드라마에서 유독 능청을 떠는 장면이 많았다. 물론 이 능청은 멋있는 남자 은성의 일부분이었다. 은성이라는 인물이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지안을 사랑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능청스러운 가운데서도 진중한 모습을 잃지 않는 중도를 지켜야 했다.
“행여나 능청스러운 모습이 장난으로 느껴지거나 연기로 비쳐질까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기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죠. 은성은 여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멋있는 남자잖아요. 로망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이번 작품에서 그가 고민한 것은 또 있었다. 박건형은 뮤지컬 배우 출신인 까닭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는, 드라마에서 뮤지컬 연기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는 “거칠게 연기한 적은 없는데 내가 연기하는 모습이 열정적으로 비춰진 것 같다”면서 “이번 드라마에서 혹시 내 연기가 과하게 보이지 않을까 상대배우들과 조율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낮은 시청률, 많이들 물어보지만...
‘아이두 아이두’는 경쟁작이었던 KBS 2TV ‘각시탈’, SBS ‘유령’에 치여 한자릿수 시청률로 종영했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김선아를 비롯해 박건형, 이장우 등 배우들의 열연은 빛났지만 시청률은 아쉬웠다.
“시청률이 낮은 것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시죠. 그런데 저는 어머니가 재밌게 보셨다고 하니깐 괜찮습니다. 뮤지컬만 하다보니깐 부모님께 이기적인 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드라마를 해야 작품을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아들이 배우인데 드라마를 안 하니깐 주변 분들에게 이야기하실 게 없잖아요. 부모님의 어깨에 힘을 실어드렸으니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청률은 신통치 않았지만 박건형은 ‘아이두 아이두’를 통해 한번쯤은 사랑을 받고 싶은 멋있는 남자로 각인됐다. 인터넷에는 배우 박건형을 다시 봤다는 글들이 쏟아졌다.
그는 이에 대해 “그동안 너무 내 멋대로 작품을 했다”면서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꾸준히 연기를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건형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린 후에도 뮤지컬을 놓지 않았다. 한동안 뮤지컬에만 전념을 하느라 방송 활동에 뜸했던 것도 사실이다.
“TV에 안 나오면 잊히잖아요.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연예계 사람들에게도 배우 박건형이라는 사람이 많이 잊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이번 드라마가 남달랐죠. 정말 신인의 마음으로 즐겁게 연기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 박건형에게도 배운 게 많은 작품이었어요.”
드라마가 종영을 했는데도 그는 쉴 틈 없이 바쁘다. 보통의 배우들이 드라마 한 편이 끝나면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건만, 그는 다음 달 막이 오르는 뮤지컬 ‘헤드윅’ 연습에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시간을 쪼개 기어코 오전에 연습을 마치고 왔다. 쉬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해도 무대가 좋아 선택했다.
박건형은 이번 작품에서 트렌스젠더를 연기한다. 이제 완벽한 남자 조은성을 내려놓고 아픔이 있는 트렌스젠더 헤드윅을 표현할 차례다. 그는 “헤드윅의 고통과 아픔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박건형이라는 인물을 캐릭터 안에 숨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다”고 각오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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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