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잠실 마운드에 오른다면 무슨 기분이 들지 상상도 못하겠다. 그 느낌을 다시 겪어보고 싶다.”
LG 좌완투수 신재웅(30)에게 지난 6년은 내리막 코스만이 반복된 롤러코스터였다. 신재웅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순위로 LG에 입단, 팀 내 좌완유망주로서 신인시절부터 꾸준히 1군 마운드를 밟으며 성장과정을 한 단계씩 밟았다. 그리고 2006년 8월 11일 잠실 한화전에선 신재웅이란 이름 석 자는 1피안타 완봉승이란 기록과 함께 찬란하게 빛났다. 전지훈련에서 메이저리그 유명 투수코치로부터 받은 찬사를 직접 증명했다. 당시 2년차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대로 미래가 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 앞에서 그 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재웅은 이듬해 보상선수로 두산으로 이적했는데 어깨 부상으로 2007시즌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2007년 11월에 방출 당했다. 방출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사형선고를 의미했다. 방출 후 2006년 8월의 호투를 지켜봤던 LG팬에게도, 팀의 좌완 갈증을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던 두산팬에게도 신재웅은 이미 지나간 존재였다.

그대로 끝나는 것 같았다. 2005년 마침내 프로의 문턱에 들어선 즐거운 기억도, 2006년 전지훈련에서 들었던 찬사도, 8월 11일 잠실에서의 호투도 그저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방출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 글러브를 내려놓은 신재웅은 그저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했다.
다행히 인연의 소중함이 신재웅을 일어설 수 있게 했다. LG 시절 자신을 지도했던 차명석 투수코치로 인해 다시 글러브를 잡았다. 어깨 상태는 물음표 투성이었지만 공익근무요원 일과를 마친 후 차명석 코치의 주문대로 재활에 매진했고 주말에는 모교에서 후배들과 그라운드를 밟았다. 결국 재활에 성공, 2011년 신고선수로 다시 LG 유니폼을 입었다.
차 코치는 “신재웅의 능력을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재웅이 갖고 있는 간절함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왼손투수기 때문에 팀에서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당시 감독님이 흔쾌히 신재웅의 영입을 허락해주셨다”며 신재웅이 다시 합류하게 된 과정을 회상했다.
이대로 힘든 시간은 다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전지훈련을 앞두고 열린 체력테스트에서 상위권 성적을 올렸다. 김기태 신임감독의 눈에 들어와 정식으로 팀과 등록했고 전지훈련 명단에도 포함됐다. 전지훈련 기간 동안 팀에서 가장 좋은 구위를 뽐내며 연습경기서 호투,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청신호를 켰다. 2월까지만 해도 4월 8일 삼성과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 선발투수는 이승우가 아닌 신재웅이었다.
희망을 찾은 신재웅은 5년 만의 전지훈련에서 “참 오랜만에 와보는 전지훈련이다.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방출됐지만 야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아서 다시 이곳에 오게 된 것 같다”고 밝게 웃으며 “시즌 개막까지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그러나 또 인내의 시간이 찾아왔다. 귀국 후 다시 부상의 악몽이 찾아왔고 개막전 엔트리 진입에 실패했다. 6월 2일 마침내 1군 엔트리에 등록, 8일 선발 등판이 예고됐지만 우천연기와 함께 신재웅의 선발 등판은 취소됐다. 당시 예비 선발투수 자원이었던 신재웅은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갔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신재웅은 비 내리는 잠실구장 마운드를 바라보며 “정말 어렵게 잡은 기회라 솔직히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하다보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며 “시즌 끝날 때 내 자신에게 후회가 남지 않도록, 팀에서 필요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7월 26일 잠실 두산전. 2148일 만에 신재웅은 선발투수로 그라운드에 섰다. 경기 전 차명석 투수코치는 “신재웅에게 아무 말도 안 했다. 그게 신재웅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고3 수험생 부모와 같은 눈빛을 보였다. 신재웅 역시 침착함을 잃지 않고 “내 자신의 투구를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마운드에 올랐다. 방출의 아픔을 겪었던 두산을 상대로 5⅔이닝 1실점. 상대 선발투수였던 외국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에게 판정승을 거둔 것과 동시에 2176일 만에 같은 자리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경기 후 신재웅은 “6년 동안 그냥 시간을 소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시간동안 내 나름대로 부족한 점을 채우려 노력해왔다”며 지난날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드디어 목표였던 잠실 마운드를 밟았다. 이제는 좋은 모습으로 오래 활약하고 싶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경기 전 어머니께 기도했고 어머니가 도와주신 거 같다. 이전부터 꾸준히 지켜봐 주신 김기태 감독님께 고맙다. 차명석 투수코치님께는 나 같은 못난 놈에게 이렇게 기회를 주신 점 감사드린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김기태 감독은 올 시즌 내내 2군 선수들을 1군 엔트리에 등록시켰다. 내부 경쟁으로 팀 전력 상승을 꾀하는 것은 물론, 지난 9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선수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날 신재웅의 호투는 LG 선수단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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