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르고 주루 플레이가 뛰어난 두산 베어스 고영민(28)은 비밀병기와도 같다. 언제든 상대의 헛점을 파고들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게 가능하다.
27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두산과 롯데의 경기에서 고영민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최근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최주환이 선발 2루수 1번 타자로 출전하면서 고영민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 그렇지만 고영민만의 갖고 있는 주루 센스는 패배 위기에 몰린 팀을 살렸다.
7회 대수비로 경기에 투입된 고영민은 0-1로 뒤진 8회 이날 경기 첫 타석에서 김성배를 상대로 좌전안타로 출루에 성공했다. 1사 후였기에 두산은 동점을 위한 희생번트를 선택하기 힘든 상황. 도루 역시 힘들게 출루한 주자가 횡사할 가능성이 있기에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후속 오재원의 타구는 중견수 쪽 평범한 플라이가 됐다. 누가 보더라도 2사 1루로 이어질 상황. 그러나 이때 롯데 중견수 전준우는 타구를 잡은 뒤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여유를 보였고, 빈틈을 놓치지 않은 고영민은 1루에서 태그업을 시도해 2루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고영민이 뛸 것이라고 전혀 생각도 못 한 전준우는 뒤늦게 2루에 송구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을 던졌기에 부정확한 송구로 이어졌다.
이어 2사 2루에서 김현수의 좌익수 방면 짧은 안타 때 고영민은 재빨리 3루를 돌아 홈 까지 파고들었다. 롯데 야수들은 재빨리 홈으로 공을 보냈지만 고영민의 활강하는 듯한 홈 슬라이딩을 막지 못했다. 결국 8회 두산은 고영민의 발로 동점을 만들었고, 9회 이종욱의 끝내기 안타로 경기를 뒤집고 2위를 탈환할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고영민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했다. 1루에서 2루로 태그업을 시도하는 건 보통 외야 깊숙한 플라이 때나 나오는 플레이다. 고영민이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오기 힘든 장면이다. 단순히 발이 빠르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순간적인 판단력과 재치가 동반돼야만 한다.
실제로 고영민은 공이 뜨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을 했다고 한다. 27일 경기가 끝난 뒤 고영민은 "중견수가 타구를 잡고 바로 던지면 그대로 1루에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멈칫하면 (곧바로 1루로) 뛸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중견수가 마음을 놓고 느슨한 플레이를 할 것까지 계산했다는 말이 된다.
고영민의 예상대로 전준우는 공을 바로 송구하는 대신 한 템포 늦췄다. 고영민 역시 "후자로 판단이 돼 뛰었고 이건 살았다라고 생각했다.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두산 김진욱(52) 감독도 고영민의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재치있는 플레이에 갈채를 보냈다. 김 감독은 경기 후 "특히 영민이의 센스있는 주루플레이를 칭찬할 만하다"며 고영민을 역전승의 숨은 공신으로 인정했다.
올 시즌 두산은 팀 홈런 34개로 KIA(25개)에 이어 7위에 그치고 있다. 부족한 장타를 보완할 가장 좋은 방법은 팀 컬러인 빠른 발을 살리는 것이다. 단순히 도루 개수를 늘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영민과 같이 상대 허를 찌르는 과감한 주루플레이가 동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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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박준형 기자,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