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홍성흔(35)은 2009년 FA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후 올해까지 희생번트를 단 1개만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번트와는 거리가 먼 선수가 홍성흔이다.
홍성흔이 롯데에서 기록한 유일한 희생번트는 2010년 5월 19일 KIA 타이거즈와의 군산 경기에서 나왔다. 1-2로 끌려가던 9회 롯데는 마무리 유동훈을 상대로 동점을 만든 뒤 무사 2루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이때 타석에 들어선 홍성흔은 당시 홈런 선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볼카운트 1-1에서 홍성흔은 기습번트에 성공, 주자를 3루에 갖다 놨다. 결국 KIA는 만루작전을 썼고, 조성환이 몸에 맞는 공으로 결승득점을 올렸다.
당시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의 성향 상 중심타선에 있던 홍성흔의 기습번트가 마뜩찮을 수 있었다. 그래서 홍성흔은 벤치에 돌아간 뒤 로이스터 전 감독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이에 로이스터 전 감독은 "결과가 좋았으니 됐다. 이번 한 번만이다"라고 눈감아 줬다고 한다.

이후 번트와는 거리가 멀었던 홍성흔이 다시 번트를 시도했다. 이번엔 주자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홍성흔은 29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1-1로 맞선 7회 선두타자로 등장, 초구에 기습번트를 시도했다. 누구도 홍성흔의 번트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 타구는 3루쪽 파울라인 바깥으로 굴러갔다.
홍성흔이 기습번트를 시도한 건 후반기 타격 페이스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기 막판 연달아 장타를 터뜨리는 등 페이스를 끌어 올리던 홍성흔은 기습번트를 시도한 타석까지 후반기들어 단 하나의 안타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 나온 잘 맞은 타구가 상대 호수비에 연달아 걸리는 불운까지 당했다. 결국 홍성흔은 그 타석에서 모처럼 외야에 큼지막한 타구를 날렸지만 중견수에 잡히고 말았다.
"후반기 들어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그라운드에서 내가 지금 뭘 하고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던 홍성흔, 야수조 최고참으로서 팀 성적과 개인 성적이 동반 하락곡선을 그려 더욱 마음고생이 심했다. 침체되어 가는 팀 분위기 속에 후배들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해야 할 상황에서 그러지 못하는 데 더욱 힘들어했다. 결국 홍성흔의 기습번트는 단순히 안타를 위한 게 아니라 베테랑으로서 팀원들에게 보여준 승리에 대한 의지였다.
2-1로 간신히 앞서간 8회 2사 만루, 다시 홍성흔에게 찬스가 걸렸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홍성흔은 임태훈을 상대로 쐐기 2타점 적시타를 작렬시켰다. 후반기 20타수 무안타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한 방이었다. 그제야 홍성흔은 후련하다는 듯 1루에서 박계원 코치와 함께 웃었다.
경기가 끝난 뒤 홍성흔은 "올스타전 때 장염이 있어서 급체를 해서 컨디션이 안 좋았다. 프로 선수라면 그것도 잘 관리했어야 했다. 이제는 많이 회복됐다"며 "힘이 빠진 상태에서 크게 치려다 보니 힘이 많이 들어갔는데 마지막 타석에서 가볍게 쳤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기뻐했다.
이어 그는 "박정태 타격코치님이 계속 밀어치라고 주문 하셨는데 덕분에 어깨가 닫혀 좋은 타격이 됐다"박정태 타격코치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면서 "더위에는 이제 적응을 했다. 앞으로는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기습번트로 승리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뒤 때맞춰 나온 쐐기 적시타, 홍성흔의 후반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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