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이 언니들이 갖고 있는 우생순의 아픈 기억을 지웠다.
2004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여자 결승전에 오른 한국은 덴마크를 맞아 연장 접전 끝에 34-34로 비겼다. 하지만 승패를 결정짓는 승부던지기 결과 2-4로 패하며 아쉬움의 눈물을 삼켰다. 당시 한국은 사상 최악의 전력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준비된 선수도 부족했고, 오죽했으면 은퇴했던 노장 선수들을 불러 모으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은 핸드볼 결승전까지 올랐고, 덴마크와 명승부는 AP 통신이 선정한 아테네 올림픽 10대 명승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핸드볼 영화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 영화로 한국 여자 핸드볼은 '우생순'으로 대변되며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패배는 패배다.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포장을 했지만 사실은 아쉬움의 순간이기도 했다. 은메달을 폄하한다는 것이 아니라 금메달을 바로 눈 앞에서 놓친 만큼 선수들로서는 아쉬움과 서러움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으로서는 지난 30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트랫퍼드의 코퍼 박스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핸드볼 여자 조별리그' B조 덴마크와 2차전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다. 8년 전의 아픔을 선사한 상대였기 때문. 게다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상대인 만큼 동기 부여도 됐다.
선수들의 마음 만큼 경기는 쉽게 풀렸다. 최종 결과는 25-24로 1점 차였지만 경기 내용은 덴마크를 압도했다. 후반 중반까지 15-15로 접전을 펼친 한국은 속공이 터지기 시작하며 점수 차를 벌렸다. 권한나와 우선희, 이은비의 연속 득점으로 점수 차를 벌린 한국은 조효비와 심해인, 정지해의 득점포까지 터지며 21-16으로 앞서갔다. 막판 조효비가 2분 퇴장을 당하며 1점 차까지 쫓겼지만 경기 내용은 전혀 다급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마치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뻐했다. 그 중심에는 8년 전의 서러움을 현장에서 경험한 우선희(34, 삼척시청) 문경하(32, 경남개발공사) 최임정(31, 대구광역시청) 김차연(31, 오므론) 4명의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픈 기억을 지워준 선수들은 조효비(21) 류은희(22, 이상 인천시체육회) 심해인(25) 정지해(27, 이상 삼척시청)등의 젊은 피였다.

이날 조효비는 7번의 슈팅 중 5개를 득점으로 연결하며 승리의 주역이 됐고, 류은희와 심해인 정지해도 4골씩을 덴마크 골대 안으로 집어 넣으며 승리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말 그대로 동생들이 언니들의 복수를 해준 셈이다.
동생들의 복수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지 예선 2경기를 마쳤을 뿐이다. 앞으로 예선 3경기, 그리고 8강을 넘어 결승전까지 노리고 있다. 8년 전 아쉬움의 은메달에 그쳤던 만큼 동생들은 한국을 금메달로 이끌어 언니들의 한을 풀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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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비(위)-류은희 / 런던(영국)=올림픽공동취재단 phot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