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 나가 본 적이 없어서 긴장감은 잘 모르겠어요".
당찬 입심에 기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겁없는 막내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긴장감을 모르겠다"던 약관의 여사수 김장미(20, 부산시청)가 첫 출전한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김장미는 1일(한국시간) 오후 영국 런던 왕립포병대 사격경기장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결선에서 합계 792.4점(예선 591점+결선 201.4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김장미가 따낸 금메달은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에 이은 두 번째 사격 금메달이자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10m 공기 소총의 여갑순 이후 20년 만의 여자 사격 금메달이다.

예선에서 완사 298점 급사 293점을 쏘며 올림픽기록을 경신한 김장미는 결선에서도 다부진 모습으로 과녁을 조준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2위 천잉(중국)에 5점 앞선 점수차로 결선을 시작한 김장미는 2라운드부터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연속으로 9점대를 쏴 3라운드 마지막 10.8을 쏜 천잉에 역전당했다.
0.8점차로 역전당한 상태에서 마지막 4라운드를 맞은 김장미는 첫 발을 천잉과 같은 10.1점을 쏘며 추격에 불을 붙였다.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 김장미는 결국 역전에 성공, 792.4점으로 천잉을 2위로 밀어내며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기쁨을 안았다.
올림픽 첫 출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대한 경기 운영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2~3라운드의 흔들림을 극복하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부를 결정지은 점이 대단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자기 스스로를 믿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목표는 당연히 모든 대표선수들의 꿈인 금메달이다"라고 공언했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던 김장미였기에 가능했다.
김장미는 고교 2학년 때인 2010년 출전한 제1회 아시아청소년대회와 제1회 유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여자권총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처음 출전한 시니어 대회(2012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공기권총 10m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김장미는 2번째 출전한 시니어 대회인 국제사격연맹(ISSF) 런던월드컵 여자 25m 권총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격은 대표적인 멘탈 스포츠다. 그러다보니 대한사격연맹은 생각보다 일찍 드러난 '비밀병기' 김장미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난색을 표했다. 베테랑도 흔들리기 쉬운데 아직 국제대회 경험도 많지 않은 김장미가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변경수 국가대표팀 감독이 '스마트폰 압수령'까지 내리며 김장미 관리에 나선 이유였다.
변 감독의 걱정이 들어맞았는지 김장미는 여자 10m 공기권총 예선에서 멘탈 관리에 실패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김장미는 각각 10발씩 총 4라운드를 쏘는 예선에서 1, 2라운드 각각 97점을 쏘며 무난하게 시작,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3라운드에서 급격히 흔들리며 95점을 기록, 4라운드마저 93점으로 마치며 예선 382점으로 전체 13위에 머물며 결선 진출에 실패한 것.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다. 경기장을 떠나면서도 김장미는 자신이 쏜 과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변 감독의 지론은 김장미에게도 교훈을 남겼다. 단 한 발의 실수에 흔들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김장미는 설욕을 다짐했다. 메달에 대한 집념은 더욱 강해졌고 자신의 참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10m 공기권총의 결과가 혹시라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무의미했다. 잠시 주춤했던 김장미의 당찬 자신감은 결국 세계를 압도했고 실전에 강한 승부사 기질은 자신에게 쏟아졌던 모든 걱정을 기우로 만들었다. 우려했던 것처럼 크게 긴장하지도 흔들리지도 않고 침착하게 과녁을 명중시켰다. 이유가 있었다. 김장미의 저력은 바로 오기였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다. 국제대회 나가서 우승을 못한 적이 없다"는 서성동 부산시청 감독의 말처럼 김장미는 타고난 오기를 원동력으로 삼는 선수다. "우승한 선수들이 "금메달 땄어요"하면서 소감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끓는다"고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다.
'파이터'의 뜨거운 혼을 집중력과 냉정함으로 억누르고 런던에 금빛 총성을 울린 김장미는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여갑순(10m 소총) 이후 한국 여자사격의 대들보로 거듭났다. 금메달은 시작일 뿐이다. '흔들림 없는 명사수'로 또 한 번 진화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선배인 진종오의 뒤를 이어 여자 사격의 희망을 쏜 김장미가 앞으로 걸어나갈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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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영국)=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