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코리안특급' 한화 박찬호가 하마터면 팬에게 발길질을 당할 뻔한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1일 잠실 LG-한화전. 허리 통증 이후 13일 만에 선발 복귀전을 가진 박찬호는 6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1실점으로 LG 타선을 봉쇄하며 팀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5승을 거둔 박찬호는 경기 후 언론 인터뷰에 임한 뒤 가족과 지인들을 잠깐 만나느라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늦게 구단 버스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내와 두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당당히 승리투수가 된 박찬호는 경기 후 라커로 조르르 달려오는 딸들에게 뽀뽀하고 지인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등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팬들도 박찬호의 이름을 어느 때보다 크게 연호하며 환호했다. 그런데 얼마 후 참 어이없는 일을 벌어졌다.

구단 버스가 위치해있는 잠실구장 입구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 박찬호는 양 옆으로 길게 진을 쳐놓은 팬들의 환호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LG 유니폼을 입은 한 중년의 남성팬이 팬들 사이를 뚫고 나오더니 박찬호에게 발길질을 하려 했다. 상황을 목격한 한화 구단 관계자는 "왠 술취한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 발길질을 하려 했다"며 "다행히 경호원이 제지해 헛발질로 끝났다. 워낙 갑작스런 상황이라 경호원들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박찬호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구단 버스에 올랐다. 기분 나빠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스타답게 잘 넘어간 박찬호지만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복귀전을 기분 좋은 승리로 장식한 그가 경기장을 떠나는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는 점에서 한국프로야구의 팬 성숙도와 응원문화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그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사건이다.
한국프로야구는 올해 최소경기 500만 관중을 돌파하며 700만 관중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가족 및 여성 관중의 대폭적인 증가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최고의 국민 스포츠 거듭났다. 런런 올림픽 기간에도 야구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을 정도로 확고 부동한 인기 컨텐츠로 발돋움했다. 이 모두 팬들의 관심이 만든 결과다.
그러나 때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관중들의 응원문화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박찬호에게 발길질을 하려 한 팬은 물론 몇몇 선수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협박성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극악무도한 팬들도 있다. 대다수 구단 관계자들은 도가 지나친 열혈팬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이는 코칭스태프·선수들에게도 큰 스트레스다.
응원문화도 다르지 않다. 상대를 자극하는 지나친 응원구호를 놓고 팬들 사이에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이 찾는 야구장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행동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득실 거린다. 나날이 인기가 치솟고 수준도 높아진 한국프로야구이지만 후진적인 응원문화를 고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팬들의 자체 정화와 구단의 팬 관리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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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