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사례로 보는 투수 보직 변경의 성패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2.08.03 12: 40

투수에게 맞는 보직은 있는 것인가.
한화 외국인 투수 데니 바티스타(32)가 선발 전환 후 2경기에서 1승 평균자책점 0.71로 반전을 연출했다. 시즌 중 갑작스런 보직 전환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박이다. 지난해 모습은 영락없는 마무리였던 바티스타는 그러나 올해 마무리로 실패했고, 갈 곳 없는 신세에서 선발로 동아줄을 잡았다. 이 같은 사례는 바티스타에만 한하지 않는다.
▲ 보직 변경으로 성공한 투수들

대표적인 투수가 두산 노경은이다. 노경은은 지난해부터 구원으로 등판한 불펜투수였다. 그러나 지난 6월 임태훈이 부상으로 선발진에서 빠지고, 노경은이 불펜에서 흔들리자 선발로 여유있게 던지며 자신감을 찾기 위한 차원으로 6월6일 잠실 SK전에 첫 선발등판했다. 당초 김진욱 감독은 "임시 선발이다. 경은이는 불펜에 적합한 투수"라고 했지만 선발등판에서 기대이상 호투를 펼치자 아예 선발로 굳혔다. 선발 전환 후 8경기에서 4승2패 평균자책점 2.96으로 불펜(3.96) 때보다 훨씬 좋다.
두산은 노경은 뿐만 아니라 이용찬도 선발 전환 후 성공한 케이스다. 지난 2009년 25세이브로 구원왕과 함께 신인왕에 오른 이용찬은 지난해부터 선발로 전환했고, 올해 풀타임 선발 2년차를 맞아 완급 조절에 완전히 눈을 떴다. 올해 18경기에서 8승7패 평균자책점 2.58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정상급 우완 선발로 거듭났다.
한화의 2선발로 거듭난 김혁민도 올해 시작은 불펜이었다. 한대화 감독은 "장차 우리팀 미래의 마무리투수감"이라며 그의 빠른 공과 두둑한 배짱에 주목했다. 실제로 4월 한 달간 불펜에서 0점대(0.90) 평균자책점으로 호투했다. 하지만 선발진 붕괴와 함께 5월부터 선발진에 합류했는데 12경기 중 9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작성했다. 이닝이터 능력까지 보이며 붙박이 선발로 자리 잡았다.
LG 봉중근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5년간 선발로 활약했지만 올해부터 마무리로 변신했다. 16세이브 평균자책점 1.61를 기록하며 LG의 철벽 수호신으로 거듭났다. 팔꿈치 재활 여파로 많은 공을 던질 수 없는 몸 상태가 마무리로 전환의 가장 큰 이유이지만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 공격적인 승부 근성이 마무리로도 적합했다.
이외에도 지금은 대한민국 대표 에이스가 된 KIA 윤석민도 데뷔 초에는 중간·마무리 불펜투수로 뛰었다. LG 유원상은 오랜 기간 선발로 자리잡지 못하다 특급 불펜으로 변신하며 전환점을 마련했다. 삼성 윤성환은 중간에서 선발, 넥센 손승락은 선발에서 마무리로 보직을 전환하며 더 큰 성공을 이룬 케이스다.
외국인 투수 중에서는 2002년 KIA 외국인 투수 다니엘 리오스가 개막 후 7월까지 마무리로 29경기 5승3패13세이브에 평균자책점은 3.77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8월부터 선발로 전환한 후 13경기에서 9승2패 평균자책점 2.57로 대반전을 이루며 오랜 기간 선발로 승승장구했다. 2003년 두산에서 활약한 일본인 투수 이리키 사토시도 5월가지 마무리로 21경기 3패5세이브에 그쳤지만, 6월 이후 선발 18경기에서 완봉승 하나 포함 5차례 완투를 거두는 등 7승을 올리며 보직 전환이 대성공했다.
▲ 실패에 대한 부담, 시간 걸리는 숙제
그러나 꼭 성공만 있는 게 아니다. 실패도 많다. 시즌 초반 마무리로 기용됐으나 크게 실패한 LG 레다메스 리즈가 그랬다. 지난해 선발로 11승을 거둔 리즈는 시즌 초 마무리로 나온 7경기에서 2승5패 평균자책점 13.50으로 무너지며 마무리 보직을 내놓아야 했다. 선발 복귀 후에도 들쭉날쭉한 피칭으로 코칭스태프 애간장 태우고 있다. 지난해 중간과 마무리로 활약하다 올해 선발로 전환한 임찬규도 사실상 1군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다.
KIA 한기주도 보직 때문에 고민이 많은 투수다. 데뷔 초 선발로 기용된 19경기에서 4승10패 평균자책점 4.82에 그쳤던 한기주는 불펜 전환 이후 25경기에서 6승1패1세이브8홀드 평균자책점 0.95로 맹활약했고, 이듬해부터 마무리로 고정됐다. 그러나 마무리 실패에 대한 부담이 가중됐고 선수 본인은 점점 선발에 대한 희망이 커졌다. 모 해설가는 "투구 스타일이나 마인드를 볼 때 한기주는 마무리보다 선발이 맞다"고 하지만 팀 사정상 선발보다는 마무리로 기용돼야 한다는 게 문제다.
한화의 경우에도 올해 연이은 보직이 수차례 변경되는 진통을 겪었고, 이제야 안정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시즌 초반 선발로 나온 안승민이 지금은 마무리로 들어간 게 대표적이다. 전형적인 선발 타입으로 평가된 안승민이지만 이제는 마지막 순간을 막는 폼이 나는 마무리로 변했다. 바티스타가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환하는 과정도 계획과 의도대로 움직인 건 아니다. 상당수 팀과 투수들이 의도치 않은 보직 변경이 성공한 게 더러있다.
현역때 선발-마무리부터 말년에는 중간까지 다양한 보직을 경험한 한화 송진우 투수코치는 "투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보직이 있다. 힘으로 승부하는 투수는 짧게 던지는 게 좋고, 제구와 밸런스로 던지는 투수는 길게 던지는 게 맞다"며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투수들마다 성격·체력·구종 등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투수에게 맞는 보직을 찾기란 그만큼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실패할 경우에는 부담도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조금 걸려도 각자에게 맞는 옷을 찾는 게 최선의 길이다. 퇴출 직전의 바티스타였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놓치기 힘든 투수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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