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코리아' 외치게 해준 '오뚝이 검객' 2인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2.08.04 18: 03

2전 3기로 2012 런던발 한국 펜싱의 돌풍을 이끈 2명의 주인공이 있다.
한국 펜싱은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서 2개의 메달(남자 플뢰레 김영호 금, 남자 에페 이상기 동)을 따낸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현희(여자 플뢰레)의 은메달 등 올림픽서 총 3개의 메달을 따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한국은 런던에서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펜싱에서 총 5개의 메달(금2 동3)을 수확하는 업적을 이뤄내며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강타했다.

여자 사브르 개인전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지연을 비롯해 남현희 전희숙 정길옥 오하나가 출전한 여자 플뢰레 단체전(동)과 남자 에페 개인전의 정진선(동) 등이 한국 펜싱사의 한 획을 그은 주역들이다..
그리고 오뚝이 같은 한국인의 근성으로 런던에서 기적을 연출한 2명의 검객들도 있다. 남자 플뢰레 개인전서 동메달을 목에 건 최병철(31, 화성시청)과 남자 사브르 단체전서 금메달을 목에 건 오은석(29, 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최병철은 첫 출전한 2004 아테올림픽서 개인전 16강에서 좌절을 맛보며 14위에 그쳤고, 단체전서도 7위에 머물렀다. 아픔은 칼을 잡은 뒤로 가장 전성기였던 베이징올림픽서도 이어졌다. 메달 획득이라는 명확한 청사진을 그렸던 최병철은 당시 은메달을 목에 건 일본 선수와 개인전 16강에서 만나 접전 끝에 1점 차 통한의 패배를 당하며 9위에 머물렀다.
베이징의 충격 이후 더 큰 시련이 그에게 닥쳐왔다. 형·동생 사이로 선수 시절을 함께 보낸 뒤 베이징올림픽서 스승과 조력자로 연을 함께 했던 코치가 자살을 한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목 부상으로 수술을 감행한 최병철은 1년 동안 칼을 내려 놓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심기일전해 지옥 같은 훈련을 소화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지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플뢰레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며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본인의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라 강조했던 런던에서 세계의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금메달보다 값진 귀중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은석은 21살의 어린 나이에 아테네올림픽을 통해 영광의 무대에 처음으로 섰다. 젊은 혈기로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32강전 탈락. 올림픽에 앞서 열린 2003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서 개인전 은메달을 목에 걸며 사브르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입상했고, 단체전서도 한국에 사상 첫 청소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안겼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4년을 절치부심하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이었던 베이징서도 16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을 맛봤다. 쓰라린 아픔이었다. 8년을 기다려 온 꿈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포기할 만도 싶었다. 하지만 올림픽 시상대 위에 선다던 꿈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은석은 주연이 아닌 후배들을 보조하는 조연으로서 본인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와 다름 없는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회 기간 내내 조용하던 그가 가장 중요하고도 절체절명의 순간인 남자 사브라 단체전 결승전 무대 위에 올랐다. 35-23으로 한국이 리드하던 순간 비밀 병기로 피스트에 선 오은석은 루마니아의 티베리우 돌니체아누에게 5-1로 완승을 거두며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 됐다.
결국 오은석은 자신이 아끼는 후배들과 함께 한국 펜싱 사상 단체전 첫 금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가 목에 건 금메달은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한국의 통산 100번째 금메달이었기에 더욱 값진 결실로 다가왔다.
dolyng@osen.co.kr
오은석-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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