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한국 프로야구 팬들은 '무쇠팔'최동원과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KIA 감독)의 대결에 즐거워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2000년 초반 e스포츠 팬들은 '황제' 임요환(32)과 '폭풍' 홍진호(30)의 맞대결에 가슴떨리는 설레임을 느꼈다. 숙명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갖다 붙일 수는 없지만 매 번 중요한 순간에 실력을 겨뤘던 임요환, 홍진호 이 둘에게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승패를 떠난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간단하게 뒤집어졌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역시 숙명의 라이벌 다웠다. 스타리그 레전드매치의 마지막을 장식한 여든여덟번째 '임진록'서 '폭풍' 홍진호(30, 제닉스 스톰)가 웃었다.
홍진호는 4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 특설무대에서 벌어진 '티빙 스타리그 2012' 레전드매치서 저그의 최종병기인 울트라리스크와 퀸의 감염된 테란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숙적 임요환을 넉다운시켰다. 2001년 코카콜라 스타리그 결승전과 2004년 에버 스타리그 4강전을 기억하던 e스포츠 팬들은 두 라이벌이 스타리그 레전드매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모습에 잠시 추억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임진록은 시작부터 팽팽한 분위기에서 출발했다. 임요환의 장기인 전진 벙커링을 염료한 홍진호는 스포닝풀을 올린 뒤 앞마당으로 보낸 드론을 잠시 숨겨두면서 임요환의 눈을 속이는 신경전과 두뇌싸움이 치열했다.

먼저 공격의 칼을 뽑은 것은 임요환. 홍진호가 투 해처리 뮤탈리스크 올인으로 전략의 방향을 잡았지만 임요환은 소수의 바이오닉 특공대로 홍진호의 공격타이밍을 훔쳤다. 그러나 홍진호도 만만치 않았다. 7시 본진과 앞마당에서 자원줄을 쥐고 있던 홍진호는 11시 본진 지역을 차지하면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홍진호는 자원력을 바탕으로 가디언과 울트라리스크을 생산, 힘에서 임요환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가디언으로 임요환의 앞마당을 공략하고 울트라리스크로 임요환의 두 번째 확장기지를 공략하면서 사실상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임요환이 남은 병력으로 역전을 노렸지만 홍진호는 디파일러와 병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상대 앞마당까지 폭풍같이 진격, 항복을 받아냈다.
scrapp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