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또 울었다. 피스트에서 그녀를 다독여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피스트에서 끌려 나왔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약의 계기로 삼아 보란듯이 성공을 일궈냈다.
신아람(26, 계룡시청)이 활짝 웃었다. 신아람과 정효정(28, 부산시청) 최인정(22, 계룡시청) 최은숙(26, 광주서구청)으로 구성된 여자 펜싱 에페 대표팀은 5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엑셀 사우스 아레나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 중국과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금메달을 놓쳤지만 에페 여전사들을 탓할 이는 아무도 없다. 펜싱 에페 단체전 역사상 첫 결승 진출이었다. 은메달을 따낸 것만 해도 한국 펜싱 역사에 남을 업적이다. 대회 개막 전 해도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메달을 딸 것이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 그 중에 돋보이는 건 신아람이다. 나머지 세 선수가 신아람보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아니다. 신아람이 지난달 31일 열린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1시간여를 피스트에서 눈물을 흘린 사연이 있기 때문.
당시 신아람은 연장 접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경기 종료 1초를 남겨둔 시점에서 시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억울한 패배를 당했다. 명백한 오심이었다. 신아람은 피스트를 떠나지 못한 채 1시간여를 울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심판진들은 오심을 정정하지 않았다. 결승 진출이 좌절된 신아람은 힘이 빠져 동메달 결정전에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4위에 그쳤다.
신아람의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KOC)의 어설픈 행정에 또 다시 상처를 받은 것. 신아람의 준결승전 오심이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며 관심을 받자 국제펜싱연맹(FIE)은 신아람에게 특별상을 제안했다. 대한체육회는 수락했지만 정작 신아람과 대한펜싱협회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다. 신아람과 대한펜싱협회는 FIE의 꼼수인 특별상을 거절했다.

체육회의 의식하지 못한 상처내기는 계속됐다. 이번에는 공동 은메달 추진이었다. 체육회는 FIE와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신아람에게 공동 은메달 수여 해달라고 한 것.하지만 IOC의 답변은 당연히 'No'였다. 애시당초 가능성이 0%에 가까웠다. 불가능한 공동 은메달 수여 추진으로 여론을 살펴보려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았다. 하지만 신아람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치부심하는 자세로 단 5일 만에 재기했다. 신아람은 팀의 중심으로서 한국 에페를 결승 피스트로 이끌었다. 메달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았다. 금메달이 됐든, 은메달이 됐든 '멈춰버린 1초'로 놓쳤던 개인전 결승행의 진정한 주인공은 신아람이었다는 것을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이제 신아람은 활짝 웃고 있다. 5일 전 억울함에 울음을 그치지 못하던 그녀가 아니다. 상처를 치료했다. 그녀의 상처를 치료한 건 미숙한 행정처리를 일삼은 체육회도, 그녀가 소속된 대한펜싱협회도 아니다. 신아람 스스로가 자신의 실력을 전세계에 입증하며 '멈춰버린 1초'가 남겼던 깊은 상처를 치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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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영국)=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