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신조어는 정신적인 충격을 의미하는 멘탈 붕괴 이른바 '멘붕'이다. 야구는 멘탈 게임이라고 하는데 전·후반기 달라진 한화가 좋은 예가 되고 있다.
한화는 전반기 독보적인 최하위로 희망없는 절망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후반기 8승3패로 리그 최고의 성적을 내며 반전을 연출하고 있다. 한대화 감독은 "선수들이 이제야 부담없이 플레이하고 있다"며 달라진 마음가짐을 큰 변화로 꼽았다. 선수들은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올해 한화는 국내 최초로 경기력 향상 코치로 이건영(33) 멘탈코치를 채용했다. 이 코치는 한화 선수단의 멘탈 붕괴 극복 과정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 높은 기대·관심이 부담

한화는 시즌 초반부터 이상하리 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한대화 감독은 "공수주에서 납득 되지 않는 플레이가 많았다. 부담감이 너무 많았고 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몇 차례 실수가 거듭되며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된 게 플레이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뜻.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이 많아 '자멸 야구'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도 붙었다.
이건영 코치는 "사람이 물속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다 더 힘을 쓰게 돼 깊게 빠져들게 된다. 우리팀도 시즌 초반 주위의 높은 기대와 많은 관심을 받으며 시작했다. 너무 살려고 힘을 쓰다 보니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고 부진에서 헤어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성적이 내려간 뒤부터 오히려 마음의 힘이 빠졌다. 과거에 못했던 것에 더 이상 지배당하지 않고, 원래의 갖고 있는 기량이 나오는 과정에 있다"고 분석했다.
▲ 멘탈 향상도 기술이다
이건영 코치는 올해 스프링캠프 때부터 선수단과 동행하며 면담을 통해 심리 안정과 정신력 향상에 힘썼다. 최근에는 2군 선수들의 상담 업무도 맡고 있다. 시즌 중반까지 멘탈 붕괴로 고생한 외국인 투수 데니 바티스타도 이 코치와 7차례 면담을 통해 심리 불안을 극복했다. 선수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라커룸 앞에는 이 코치가 직접 쓴 '덕아웃 칼럼'을 붙여놓아 선수들이 수시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선수들은 "글을 읽으면 심적으로 안정되고, 좋은 글귀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효과를 역설했다.
이 코치는 "격려와 위로는 주위 동료 선수들도 할 수 있다. 나의 역할은 선수와 상담을 통해 멘탈을 향상시키는 기술을 기르는 것이다. 타격을 하는 것도 기술이듯 멘탈 역시 마찬가지다. 긴장될 때 냉정하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라며 "바티스타의 경우에는 스스로 불안과 긴장을 통제하지 못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기억에 지배받게 되는데 그 기억에 너무 얽매이면 어려워진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반복적인 루틴을 통해 극복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 멘탈 코치 멘붕은 없다
시즌 초반 한화의 성적이 기대치를 크게 밑돌자 우스갯소리로 '멘탈코치의 멘탈도 붕괴됐을 것'이라는 농담이 나왔다. 이 코치도 "팀 성적이 좋지 않아 당연히 아쉬움이 많았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멘탈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린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수록 선수들의 행동을 깊게 관찰하고 상담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야구에서 투구든 타격이든 기술을 습득하는데 상당 시간이 걸린다. 멘탈도 다르지 않다. 이 코치는 "모든 기술은 경험과 반복에서 나오는 것으로 단기간 습득은 어렵다"고 말했다. 멘탈코치는 선수들의 마음을 읽는 게 일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잘 해도 걱정이다. 그는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 만큼 성적 좋은 선수들도 흔들릴 수 있다. 마음의 힘이 더 들어가 자칫 흐름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 선수에게 그런 관심은 당연한 것이고, 이를 극복하는 멘탈 기술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고 멘탈 박찬호·류현진
그렇다면 한화 팀 내 최고의 멘탈을 가진 선수는 누구일까.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최고참 박찬호는 멘탈적으로도 강한 선수였다. 이 코치는 박찬호에 대해 "이론적으로 멘탈 기술이 가장 잘 정립돼 있고 이해하는 선수다. 메이저리그 시절 이 같은 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많은 선수라 신체 준비 만큼이나 정신 준비도 많이 한다. 이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에이스 류현진도 멘탈적으로도 타고난 선수였다. 이 코치는 "신체를 타고나듯 멘탈도 타고나는 게 있는데 류현진이 그렇다. 마음의 힘이 덜 들어간 선수다. 소심한 사람은 말 한마디에도 고민하고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하지만 류현진은 그러한 불안 상태가 전혀 없다. 적절한 긴장을 즐기고, 부담을 떨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거듭된 불운에도 류현진이 웃을 수 있는 건 타고난 멘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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