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설움' 최영래의 눈물이 金만큼 값진 이유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08.06 00: 11

"긴장하는 버릇이요? 이만하면 많이 나아진 거에요, 좋아졌습니다".
최영래(30)를 지도했던 최광호 경기도청 감독은 벅찬 목소리로 제자의 활약에 대한 기쁨을 드러냈다. 수줍음도 많고 긴장도 잘하던 제자가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데 대한 기쁨이었다.
최영래는 5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왕립포병대 사격경기장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사격 남자 50m 권총 결승에서 92.5점(8.8, 9.8, 10.5, 9.8, 7.4, 10.5, 9.2, 9.0, 9.4, 8.1)을 쏴 예선 569점을 합해 총합 661.5점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선에서 2위에 3점 앞선 569점을 쏘며 여유있게 1위로 결선에 진출한 최영래로서는 눈 앞에서 놓친 금메달이 아쉬울 법도 했다. 마지막 사격에서 8.1점을 쏘는 통에 금메달이 은메달로 바뀐 최영래의 눈물은 그래서 모두들 그저 아쉬움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러나 어린 아이처럼 울어버린 최영래의 눈물에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국가대표를 상징하는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내보일 수 있었던 기쁨, 공기권총 10m에서 35위에 그치며 결선 진출에 좌절했던 순간의 아픔, 그리고 너무나 힘들게 차지한 국가대표라는 자리에 대한 미안함과 행복함, 그리고 이제서야 당당하게 느낄 수 있게된 그 자부심까지 복잡한 감정들이 하나가 되어 회오리치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 한 발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히 담겨있을 터였다.
무명의 설움을 딛고 국가대표로 발탁된 최영래는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국제대회 경험도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무명의 최영래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최영래가 이번에 차지한 자리의 주인은 이전에는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에 빛나는 사격계의 총아 이대명(24, 경기도청)의 것이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처음 치러질 때만 해도 모두들 이대명이 진종오와 함께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게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변경수 사격대표팀 감독의 말처럼 이를 악물고 쏜 최영래의 총은 그에게 태극마크를 안겨주었다. 이대명의 부진 속에서 흔들림 없이 제 실력을 냈던 최영래는 2009년 당시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만 허락받았던 태극마크를 다시 달 수 있게 됐다.
기쁨만큼 부담도 컸다. 같은 실업팀 후배이기도 한 이대명의 존재감은 최영래를 옥죄어왔다. "속으로는 좋았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같은 팀 동료이기도 하고, 참 복잡한 기분이었죠". 런던을 향해 떠나기 전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최영래는 그렇게 말하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시 최영래는 "대명이랑 같은 방을 쓰거든요. 대명이가 많이 도와줬고 조언도 해줬어요. 여러 모로 복잡하기도 한 마음이었지만 저도 열심히 했으니까요"라며 이대명의 몫까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런던에서 은메달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최영래가 흘린 눈물은 그래서 더 진하고 아름답다. 아끼는 후배의 자리에 대신 서게 됐다는 괜한 죄책감과 성적에 대한 부담감, 평소 워낙 긴장을 잘하는 성격이라 스스로 느끼는 불안감을 모두 극복하고 은메달을 따낸 데 대한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최광호 경기도청 감독 역시 "정말 잘했다. 처음 나가는 올림픽에서 그 정도 점수를 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 자랑스럽다"며 "가슴 졸이면서 봤는데 비록 졌지만 상대가 진종오였고, 같은 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땄으니 됐다. 졌지만 정말 잘했다"며 제자에 대한 뜨거운 칭찬을 전했다.
결국 홀로 사대에 서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이 최영래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최영래의 은메달이 금메달만큼이나 그리고 그가 흘린 눈물만큼이나 값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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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영국)=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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