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른 팀에서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는 백업 선수로 뛰고 있다. 그러나 전 소속팀에서 한 때 큰 기대를 가졌던 유망주였다. KIA 타이거즈의 ‘포카리 박’ 박기남(31)이 천금 역전 결승포로 팀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박기남은 5일 잠실 두산전에 8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해 2회 역전 결승 스리런 포함 4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을 올리며 팀의 6-4 승리에 공헌했다. 뒤늦은 시즌 마수걸이포에 개인적으로는 2011년 9월 14일 대전 한화전 이후 326일 만의 홈런포였다. 최근 박기남은 주전 3루수 이범호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주역이 아닌 감초 역할로 팀에 공헌 중인 박기남이지만 한 때 그는 전 소속팀인 LG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선수였다. 배재고-단국대를 거쳐 2004년 LG에 2차 6라운드(2000년 지명)로 입단한 박기남은 안정된 수비력과 일발장타력을 지닌 내야수 유망주였다.

특히 김연중 전 LG 단장은 재임 당시 2군 경기장을 열심히 찾았다. 팀 내 유망주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구리에서 상무와의 경기가 있을 때는 박기남의 모습을 특히 주목했다. 실제로 김 전 단장은 1군 경기 전 구리 챔피언스파크에 2군 경기가 있을 때는 거의 매일 같이 들러 경기를 보고 갔다.
LG의 한 구단 관계자는 “김 전 단장께서 특히나 박기남을 아꼈다. 워낙 착하고 성실한 데다 수비력이 좋아 주전이 아니더라도 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했다”라고 밝혔다. 마침 2007시즌에는 2군에서 3할대 초중반의 타격까지 과시하며 대만 야구월드컵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던 바 있다. 성장세도 뚜렷했던 만큼 김 전 단장이 박기남에게 쏟은 애정은 대단했다. 비슷한 스타일의 동기생 김태완(LG)도 있어 둘의 경쟁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시즌 후 김 전 단장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팀은 FA 정성훈을 영입하며 3루 공백을 메웠다. 이후 상무에서 제대한 박기남은 LG에서 변변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고 지난 2009년 4월 김상현과 함께 KIA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후 김상현이 워낙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쳐 트레이드 후 스포트라이트가 김상현에게 집중되었으나 박기남도 주전 선수들의 부상 등이 있을 때 대체자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2009년 SK와의 한국시리즈 당시 박기남은 “팀이 내게 경기 후반 탄탄한 수비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광주가 인조잔디였던 반면 문학과 잠실은 천연 잔디 구장이라 정면 바운드 타구 처리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래도 LG에서 천연 잔디 수비를 해봤기 때문에 팀이 원하는 임무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며 순박하게 웃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말 성실한 팀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게 해준 한 마디였다.
지금은 주포이자 주전 3루수인 이범호의 전열 이탈 공백을 메우고 있는 박기남이다. 올 시즌 박기남의 시즌 성적은 55경기 2할8푼9리 1홈런 11타점 2실책.(6일 현재) 화려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제 몫을 확실하게 해내고 있는 선수가 바로 박기남이다.
경기 후 박기남은 “팀이 1점 차로 지고 있었고 2사 후 집중타 찬스라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려는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 홈런이 되었다”라며 “후반기 시작 시 감이 안 좋았다가 최근 괜찮아졌다. 그러나 나는 아직 주전 선수가 아닌 만큼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고 있다”라고 밝혔다. 주전 선수가 아니라 배수진을 치고 그라운드를 뛴다는 그의 말이 뜨겁게 다가왔다.
박기남은 탁월한 운동능력의 ‘5툴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팀이 필요로 하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고 뛸 수 있는 ‘매뉴얼 플레이어’다. 주연보다는 조연으로서 팀에 공헌하던 순간이 많았던 박기남은 5일 결승포로 오랜만에 어깨를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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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