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데이비스가 될 수 있을까.
역대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오랫동안 뛴 외국인 선수는 외야수 제이 데이비스였다. 지난 1999년 트라이아웃을 통해 처음 한화 유니폼을 입고 한국 땅을 밟은 그는 2003년을 제외하면 2006년까지 7년을 한화에서 활약했다. 여기, 제2의 데이비스를 꿈꾸는 외국인선수가 있다. 바로 한화 외국인 투수 데니 바티스타(32)가 그 주인공이다.
▲ 한국에서의 롱런을 꿈꾼다

바티스타는 지난해 7월 오넬리 페레즈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처음으로 아시아의 머나먼 이국 땅에서 야구를 했지만, 빠르게 한국 문화에 녹아들며 선수들과 친해졌다. 지난해 후반기 마무리투수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성적도 좋았지만 팀 사정을 이해하며 잦은 등판과 많은 투구수도 마다하지 않는 외국인선수답지 않은 헌신적인 자세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다. 선수들은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여리고 착하다. 뭔가 도와주고 싶은 친구"라고 말한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바티스타는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돈이 아주 많은 부자는 아니다. 건축 일에 종사한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으로 구김살없이 자랐고, 스스로 야구를 통해 여유있을 만큼 돈을 벌었을 뿐 대저택에서 경호원의 경비아래 사는 육촌형 페드로 마르티네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바티스타에게 한국은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7시즌 131경기를 뛰었지만, 마이너리그의 고된 생활을 오래 겪은 바티스타였다.
통역을 맡고 있는 한화 운영팀 허승필씨는 "바티스타는 지금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우리나이로 33세인데 이제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잘 안다. 한국에서 오래도록 야구를 하고 싶어한다. 안정적인 수입도 있고, 정든 한국에서 즐겁게 야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때문에 시즌 중반까지 이어진 부진과 퇴출설로 어느 때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좌절하는 모습이 많았고,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선발 전환이 대성공한 뒤 이제는 안정을 찾았다. 그는 "그동안 내가 망친 경기가 많았는데도 감독·코치님들이 끝까지 믿고 나를 살려주기 위해 많은 기회를 주셨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힘들 때 나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준 게 큰 힘이 됐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잘하고 싶다"며 진심 어린 고마움을 나타냈다. 실제로 '절친' 이양기는 바티스타가 힘들어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의 집을 찾아가 목살을 사먹이며 힘을 불어넣었다.
▲ 아들 데이미, 아버지 따르는 파이어볼러
바티스타에게는 9살 난 아들 데이미가 있다. 지난 6월7일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입국한 데이미는 오는 9일 다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 바티스타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하지만 가족들이 곁을 지키며 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달 27일 대전 롯데전을 앞두고는 데이미가 직접 시구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아버지 바티스타처럼 팔이 넘어올 때 어깨가 함께 열리는 투구폼과 빠르게 제구된 공이 뭔가 예사롭지 않았다.
알고 보니 데이미는 정식으로 야구를 배우고 있는 야구 소년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아직 9살이지만 마음 먹고 던지면 최고 구속이 100km에 육박한다고. 최고 161km까지 던졌던 아버지 바티스타처럼 파이어볼러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한화 선수들도 "팔·다리부터 어깨가 열리는 투구폼까지 똑같다"며 신기해 했다. 바티스타 부자는 한화 동료들의 이야기에 그들의 투구폼이 같다는 걸 처음 인식했다고.
바티스타는 "내가 9살일 때보다 지금의 데이미가 더 낫다. 나와도 투구폼이 비슷한데 앞으로 더 많이 배우면 좋아질 것"이라며 아들의 성공을 바랐다. 데이미의 목표는 아버지 바티스타 같은 투수가 되는 것. 다른 포지션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투수만을 바라본다. 시구도 데이미가 직접 자청할 만큼 그는 공 던지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바티스타는 "데이미의 목표는 당연히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이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한화에서 뛸 수도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바티스타는 "데이미의 시구도 시켜주고, 여러모로 구단에서 신경써줘 감사하다. 이제는 내가 보답할 차례"라며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가족들이 떠나기 전날인 8일 대전구장에서 두산을 상대로 선발 마운드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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