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金, '백인·유럽 중심' 체조에 지각 변동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08.07 13: 19

2012 런던올림픽의 슬로건은 "세대에게 영감을(Inspire a Generation)"이다. 후배들에게 꿈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도전 정신을 높이 사는 런던올림픽의 기치가 체조 무대에서 꽃피고 있다. 백인·유럽 중심주의가 만연했던 체조의 높은 문턱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2012 런던올림픽 남녀 기계체조가 열린 노스 그리니치 아레나에는 이제껏 올림픽 역사상 보기 힘들었던 특별한 금메달 세 개가 나왔다. 백인의 벽을 깬 '검은 요정'과 체조 변방국의 설움을 달랜 한국-브라질의 체조 스타가 그 주인공이다.
▲ '검은 요정'의 등장, 흑인 첫 금메달

미국의 가브리엘 더글라스(17)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검은 요정'으로 떠올랐다. 여자 기계체조 개인종합·단체전 2관왕에 오르며 금메달 두 개를 목에 건 새로운 체조여왕은 올림픽 체조사에 새로운 족적을 남겼다. 바로 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개인종합종목에서 우승한 첫 흑인선수가 된 것.
여자 기계체조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52년 헬싱키올림픽 이후 흑인 선수가 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더글라스가 처음이다.
지금까지 개인종합 금메달은 구 소련(독립국가연합 포함 7번)과 미국(4번) 체코·루마니아(이상 2번) 우크라이나가 따내 백인이 아닌 선수가 우승한 적이 없다.
남자 개인종합의 경우 일본과 중국이 총 7번 금메달을 목에 걸며 유럽세의 적수로 떠오른 바 있다. 그러나 여자만큼은 중국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백인들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던 것.
더글라스를 지도한 코치가 중국의 체조 스타였던 량차오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유럽세·백인세가 점령하고 있던 여자 기계체조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흑인 체조여왕' 가브리엘은 체조계의 중심축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냈다.
▲ 체조 변방국 한국과 브라질의 약진
여자 기계체조가 가브리엘의 선전으로 백인 중심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면 남자 기계체조서는 양학선(20, 한국)과 나바레테 자네티(22, 브라질)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남자 기계체조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동유럽의 전통적인 강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동유럽의 유명 체조 선수들을 망명시키며 체조 인재 양성에 힘쓴 미국과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1960, 70년대에 이어 다시 체조 강국으로 부상한 일본이 체조의 새로운 판도를 조성했다.
중국은 이미 강자로 자리잡은 지 오래였다. 2000년대 이후 러시아를 밀어내고 세계 스포츠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중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 체조에서 9개의 금메달(은1, 동4)을 따내며 '싹쓸이'를 이뤄냈다. 2012 런던올림픽에도 출전한 저우카이가 3관왕에 오르는 등 동유럽을 따돌리고 남자 기계체조 최강국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세의 강세 속에서도 한국은 포함되지 못했다. 일본과 중국이 남자 기계체조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면서 한국 역시 여홍철과 이주형 등 간판스타들을 내세워 뒤를 쫓았지만 금메달의 꿈을 이루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체조의 변방국가인 남미는 더욱 심했다. 북미와 달리 여전히 체조 변방국가로 남아있는 남미 브라질은 그 누구도 체조에 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다.
2012 런던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에서 양학선이 따낸 한국 최초의 금메달과 링에서 따낸 브라질 최초의 금메달이 감격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자네티의 경우 모국인 브라질에 안긴 체조사상 첫 메달이 금메달이라는 점에서 더 큰 감격을 누리고 있다.
▲ 손연재, 도전을 이어가라
이들의 도전이 의미깊은 이유는 런던올림픽의 슬로건과도 맞닿아 있다.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갈 후배들은 이들이 따낸 금메달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올림픽 첫 출전 이후 52년간 갈망해왔지만 번번이 좌절해왔던 한국 기계체조의 첫 금메달처럼 끈질긴 노력과 피땀흘린 훈련이 만들어낸 성과는 같은 도전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크나큰 위안과 격려가 된다.
양학선의 금메달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노력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사격이나 펜싱 영광의 주인공들처럼 또 하나의 영감(Inspiration)이 된다. 바로 그 영감을 계승해야할 또 한 명의 선수가 있다. 리듬체조 불모지인 한국에서 또 한 번의 도전을 꿈꾸는 손연재(18, 세종고)다.
리듬체조는 기계체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유럽의 '메달밭'이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이 쟁쟁한 선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해내는 가운데 동양의 작은 소녀가 메달을 따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나갔던 남자 기계체조처럼, 손연재의 도전이 리듬체조계의 유럽 중심주의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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