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오는 18일부터 시행하는 온라인 뮤직비디오 사전 등급제를 두고 가요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공개해오던 티저와 뮤직비디오를 적어도 공개 7~8일 전 영등위에 심의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
지난해까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잣대를 들이댄 가사 논란으로 홍역을 치러온 가요계는 이제 뮤직비디오까지 '칼질'이 가해지는 거냐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 상태. 특히 가요계는 컴백 직전에야 뮤직비디오 편집이 끝나게 마련이라 홍보 일정에 큰 차질이 예상되며, 유튜브 등의 매체로 실효성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영등위는 "심의 기간을 감안해 뮤직비디오 편집을 해줄 것"을 당부하고 "심의 기준은 사회 통념에 기반할 것이며, 재심의를 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놓았다"고 설명했다.

# 티저를 어떻게 공개하라고!
이번 제도로 가장 큰 차질을 빚는 프로모션은 티저 공개가 될 전망. 가수들은 보통 음원 발매에 앞서 노래 일부를 공개하는 티저 영상을 통해 팬들의 기대감을 극대화하는데, 이번 사전 등급 분류 제도로 티저 역시 심의를 받아야 하게 됐다. 영등위는 뮤직비디오 본편을 심의 받았을 경우, 티저는 따로 심의 받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인데, 문제는 본편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
대부분의 대형 가수들은 음원발매일까지도 뮤직비디오 편집을 다 완성하지 못해 6시간, 12시간, 나아가 며칠이나 뮤직비디오 공개를 미루기도 하고 있는 상황. 녹음을 하고, 안무를 짜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까지 빠르게는 한달 안에도 해결해야 하는 바쁜 가수들이 음원발매 7~8일 전에 본편을 완성해 심의를 미리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음원 발매일은 유통사와 의논해 한달 전에 픽스되는 만큼, 뮤직비디오 심의 상황에 따라 임의적으로 컴백일을 바꾸기도 어렵다. 국내 활동을 3~4주 가량 하고 바로 해외로 나가야 하는 K-POP 가수들의 경우에는 그 손해가 더 크다.
영등위 관계자는 "만약 본편이 다 완성되지 않았다면, 티저만 따로 제작해 먼저 심의를 받아야 한다"면서 "심의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니, 제작자 측도 심의 기간을 감안해 뮤직비디오 일정을 소화해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 유튜브는 어떡해?
K-POP 붐에 따라 가요제작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뮤직비디오 유통 경로는 바로 유튜브다. 그런데 이번 등급 분류로 유튜브에 게재할 영상물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크게 헷갈리게 됐다.
만약 '19금' 판정을 받는다 해도, 유튜브 게재를 법적으로 제재할 순 없기 때문. 국내 포털사이트는 성인 인증을 거쳐야 볼 수 있지만 유튜브는 바로 동영상 플레이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형평성에도 문제가 생기게 됐다.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유튜브가 '뻥' 뚫린 상태에서 국내 사이트만 단속하는 게 무슨 실효가 있겠냐는 입장. 아이돌 가수의 경우, 국내에서 높은 등급을 받은 영상물을 그대로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그렇다고 법적인 문제도 없는데 다시 재심의를 거치는 며칠동안 뮤직비디오를 '썩혀' 두는 것도 꺼림칙하긴 마찬가지.
영등위도 유튜브와 관련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대안을 밝히지 않고 있다. 영등위 관계자는 "유튜브는 음악서비스제공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제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 기준은 대체 뭔데?
아리송한 기준도 문제다. 가요계는 심의라는 게 얼마나 들쑥날쑥 할 수 있는지 각종 방송사 심의와 청보위 가사 심의로 '충분히' 체감한 상태. 똑같은 뮤직비디오도 방송사마다 다른 심의 결과를 내놓고, 대중은 '오케이'한 가사에 뒤늦게 청보위가 19금 딱지를 붙이는 사례도 많았다.
온라인 뮤직비디오 심의 역시 다를 게 있겠냐는 게 가요계 우려다. 이에 대해 영등위는 "앞으로 3개월의 시범기간을 두는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 한 관계자는 "처음 각종 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제작자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본 위원회가 재심의를 할 것"이라면서 "선정성, 폭력성 등 7가지 세부 등급 기준에 따라 심의가 이뤄지며 재심의 가능성도 언제든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가요계는 심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창작의 범위에 한계를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재심의는 가능하겠지만, 이로 인해 며칠간의 홍보 공백이 생기고 프로모션이 꼬이게 되면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오롯이 가수-제작자의 몫이 되는 것. 그렇다면 애초에 모험이나 실험 대신 '안정적인' 영상만 추구하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사전 등급제가 있다면 과감하게 시도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예상이다.
이에 대해 영등위는 "사회적 통념에 입각한 심의가 될 것"이라면서 "아직 시행되지 않은 제도인만큼, 조금 더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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