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실점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 박찬호의 핑계없는 초연함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2.08.09 06: 41

역시 슈퍼스타는 달랐다.
'코리안특급' 한화 박찬호(39)에게 지난 7일 대전 두산전은 한국 데뷔 후 최악의 날이었다. 4이닝 8피안타 3볼넷 1탈삼진 8실점으로 무너진 것이다. 8실점은 한국 데뷔 최다 실점. 특히 5회에만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안타 5개와 볼넷 2개로 7실점하며 팀의 5-10 재역전패를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그는 패배 속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았다.
이튿날 박찬호는 오른쪽 발목에 테이핑을 한 채로 회복훈련에 전념했다. 7일 경기에서 3회 정진호의 강습 타구에 발목을 맞은 탓이었다. 공교롭게도 이후 박찬호의 투구 내용이 좋지 않았다. 복숭아뼈가 강타당해 부어올랐고, 이튿날에야 붓기가 조금씩 빠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핑계' 대지 않았다. 그는 "다친 것과 투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못 던지고, 두산 타자들이 잘 친 것이다. 두산 타자들이 집중력 있게 세게 붙으려는 모습이 좋았다"고 잘라 말했다.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인색했던 심판 판정에 대해서도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더 잘 던졌어야 했다"며 모든 걸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패배 자체에 대한 아쉬움도 잊었다. 그는 "최악의 투구를 했지만 아쉬움은 없다. 그동안 이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 그 대신 비디오를 보면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찾아보고 보완하는데 집중했다. 좋았을 때와 안 좋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최다 실점 패배 충격 속에서도 그는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무엇이 잘못 됐는지 스스로 찾아보고 또 연구했다. 패배에 좌절하기보다 이를 떨치고 다음을 기약하며 준비한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박찬호는 8실점보다 더 한 일도 많이 겪었다. 1999년에는 페르난도 타티스에게만 한 이닝 만루 홈런 두 방이라는 초유의 기록에 희생양이 됐고, FA 대박을 터뜨리며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한 뒤에는 부상으로 몸값을 하지 못해 지역 언론의 비난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7년 뉴욕 메츠에서 방출된 후에는 마이너에서 시작해 불펜 투수로 재기했다. 2010년 뉴욕 양키스에서 방출된 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아시아 최다 124승 투수가 됐고, 지난해 일본프로야구까지 경험하는 등 숱한 좌절과 도전의 길을 길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에게 한 경기 8실점은 그리 큰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이기에 충격 회복 속도는 훨씬 빠르다. 그는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박찬호는 "여름에 따로 챙겨먹는 보양식은 없다. 한우 잘 하는 곳에 자주 가서 식사하는 것이 전부"라며 "늘 한국 음식을 먹으니까 좋다. 미국에서는 샌드위치 등으로 각자 식사를 해결했지만 한국은 경기장과 호텔에서 선수단이 다 함께 식사한다. 언제든 한국 음식을 동료들과 함께 먹을 수 있어 즐겁다"며 웃어보였다.
부상에도 그는 "발목 통증은 없다. 조금씩 붓기가 빠지고 있다"며 부상 걱정을 한 주위 안심시켰다. "복날에 뭐 좀 먹었냐"는 한대화 감독의 물음에는 "안타만 많이 먹었습니다"라는 재치있는 대답으로 좌중을 웃겼다. 숱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코리안특급은 아주 의연하고 초연했다. 그가 직접 작사하고 서진필이 부른 '박찬호 순정'에는 '실패를 해도 욕하지 마라'라는 가사가 있다. 그게 바로 박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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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백승철 기자 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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