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김태균의 4할 도전, 이제부터 시작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2.08.10 11: 39

2012 시즌이 시작되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인 5월 초순, 당시 4할 7푼대 이상의 고공 타율 행진을 이어가고 있던 김태균의 4할 가능성을 언급하는 김칫국(?) 기사를 접했을 때만해도 그러한 타격 페이스가 오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현대야구에서는 꿈의 기록이라고 불릴 정도로 불가능한 것이 당연시되는 4할이 갖는 기록의 의미도 의미이지만, 그간 한국프로야구에서 4할에 도전했던 내로라하는 순수 국내 타자들의 도전 사례도 프로 원년(1982)의 백인천(MBC) 감독 겸 선수가 세운 4할대 기록(0.412)을 제외하곤 그 뜻을 이룬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을 만큼 오르기 쉽지 않은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4할 타율을 가장 길게 지속했던 것은 1994년 바람의 아들 이종범(해태)과 1987년의 타격천재 장효조(삼성) 정도. 그러나 그들 역시 각각 8월 21일과 19일을 마지막으로 4할 선에서 미끄러진 뒤, 다시는 4할 타율을 회복해내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쳐야 했고, 1992년의 이정훈(빙그레)도 역시 6월 중순을 넘기지 못하고 4할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었다.

이러한 4할에 얽힌 타자들의 과거 도전사를 돌이켜볼 때 김태균이 아무리 수준이 우리보다 한 수 위인 일본프로야구를 경험하고 돌아온 선수라 해도 시즌 4할 타율은 그저 개인의 목표일뿐, 현실적으로는 욕심이자 무리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6월 16일 SK전에서 대타로 출장한 김태균은 시즌 첫 4할이 무너지는 한계를 만났고, 이후 야금야금 타율이 내려가 급기야는 3할 8푼대 중반까지 추락하며 4할과는 완전히 작별을 하는 듯 했다.
“그러면 그렇지!” 매서웠던 김태균의 타격솜씨였지만 4할 도전사에 있어 또 하나의 지나가는 일화에 그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달 뒤 김태균은 대반란을 일으켰다. 7월 18일 삼성전에서 하루 3안타를 몰아치며 다시 4할 타율에 복귀하는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알다시피 시즌 초반이 아닌 타석수가 많아진 중반 이후, 타율을 1푼 이상 끌어올린 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2할에서 3할이 아닌, 3할에서 4할로 라면 더욱 그렇다.
이후 김태균의 4할은 경계선을 가운데 두고 위 아래를 오르내리며 가능성을 여전히 타진하고 있다.
7월 18일, 어려워만 보이던 4할 타율로의 극적인 복귀 이후 다시 4할 밑으로 잠시 가라앉았던 김태균의 타율은 2주 만인 8월 1일 LG를 상대로 5타수 5안타를 때려낸 데 힘입어 재차 4할 수면 위로 떠올랐고, 하루 추락 후 8월 3일 또 한번 시즌 세 번째로 4할에 턱걸이 하는 등, 4할 언저리에서 고난도의 외로운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다.
증권가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빌자면 3할 9푼대를 지지선으로 두고 4할선 사이 박스권에서 타율이 요동치고 있는 형국이다. 전체대비 3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40경기 내외의 남은 잔여 경기를 감안하면 3할 9푼대에서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하방 경직성을 유지해내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로 보인다. 3할 8푼대로 다시 한번 떨어진다면 그 시점에서의 4할 복귀 희망은 몇 배 난망이다.
우리가 4할 타자를 얘기할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거론하는 인물이 한 명있다. 1941년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로 기록( .406)된 테드 윌리엄스(보스턴)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는 70년이 넘도록 4할 타자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1994년 토니 그윈(샌디에이고)이 3할 9푼 4리까지 치고 올라간 적이 있었지만 시즌 막판이던 9월 중순 ‘연봉상한제’를 두고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중도에 시즌이 종료된 것이 가장 아깝고도 근접했던 4할 도전 사례였다. 1980년 조지 브레트(캔자스시티)가 3할 9푼의 고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긴 하지만, 9월 중순 이후 잔여 13 경기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4할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 버금가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볼 때 그토록 어려운 김태균의 4할 달성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물론 여전히 비관적인 결과에 무게가 더 실려있지만 그 동안 김태균이 보여준 여러 차례의 반전을 생각하면 막연하게 불가능한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8월 9일 기준으로 김태균의 타율은 3할 9푼 7리. 기록내용은 87경기 출장에 290타수 115안타이다. 테드 윌리엄스의 1941년 당시 기록은 4할6리의 타율에 143경기 출장 456타수 185안타. 참고로 이종범의 1994년 기록은 124경기 출장에 499타수 196안타, 타율은 3할 9푼 3리였다.
김태균이 1994년의 이종범보다 유리한 점은 팀의 중심타자라는 점이다. 상대가 위기상황에서는 김태균과 맞대결을 굳이 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타율유지에 플러스가 된다. 1994년 이종범이 얻어낸 4사구 합계는 561타석에 불과 57개. 반면 김태균은 356타석에 61개를 얻어내고 있다. 열 번에 한 번 꼴인 이종범보다 여섯 번에 한 번 꼴인 김태균의 빈도가 확실히 높다.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보여준 가공할 만한 무력시위 이후 상대는 더욱 주눅들어 하고 있고 8월 김태균의 타격 페이스는 5할을 훌쩍 상회하고 있다.
선수를 지치게 만드는 사상 초유의 폭염과 무더위를 만났는데도 그의 방망이는 더욱 열을 내고 있다.
앞으로 김태균의 4할에 걸림돌이 될 요인을 꼽아보라면 부상과 같은 돌발변수를 제외하고 8월 말 이후 편성될 미편성 경기+우천경기가 열리게 될 9월 잔여일정과 대 KIA전 성적 정도를 꼽아볼 수 있겠다. 남은 경기수가 팀마다 달라 매일 주기적으로 경기를 치르기가 어려운 환경에서 타격감을 잃지 않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이고, 유독 2할 8푼대에 그치고 있는 대 KIA전 성적의 취약점을 메우는 것이 그 다음 숙제로 보인다. 올 시즌 남은 한화의 대 KIA전은 모두 6경기.
1941년 4할 타율 유지를 위한 감독의 결장권유에도 불구하고 더블헤더로 남아있는 최종전까지 정상적으로 출장을 강행(8타수 6안타 기록)하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테드 윌리엄스.
오늘날 그가 단순한 최후의 4할 타자가 아닌 위대한 타자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는 전성기 시절 목숨을 걸고 전쟁에 몸소 참전했던 사실에 힘입은 바 크지만, 경기에서도 끝까지 정정당당한 도전을 선택했던 것 또한 그의 존재가치를 후대에까지 한껏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김태균의 4할 도전이 4할 달성여부를 떠나 그 이상의 의미로서 우리 야구역사에 길이 회자될 후회 없는 도전으로 남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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