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조연이 아니다.
지난 2009년 LG에서 이적한 김상현(32)은 연일 홈런포를 터트리며 KIA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해결사라는 말을 들었다. 홈런왕와 타점왕, 그리고 페넌트레이스 MVP까지 거머쥐었다. 2군선수의 신화였다.
당시 LG에서 온 선수는 김상현만이 아니었다. 내야수 박기남(31)도 끼여 있었다. 김상현의 할약에 가렸지만 백업요원으로 성실하게 빈틈을 메워주었다. 그는 당시 동기생 김상현이 연일 이어지는 언론사의 인터뷰에 힘들어하자 "이럴 때가 좋은 줄 알아라. 나도 인터뷰했으면 원이 없겠다"고 부러워했다.

김원섭(34) 2003년 두산에서 이적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벤치워머였다. 2006년 3할3푼7리로 발돋음했으나 갑상선에 문제를 안고 있어 풀타임 활약을 못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2년연속 정규타석 3할타율에 성공했으나 이후 2년 연속 부진에 빠졌다.
그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몫을 하는 선수였다. 수비좋고 발빠른 왼손타자였다. 팬들은 학처럼 긴 다리를 가진 그에게 '타이거즈 명품다리 김원섭이'라는 응원가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완전한 선수는 아니었고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다른 선수들의 몫이었다.
포수 차일목은 영원한 2인자였다. 2003년 입단했으나 그의 앞에는 2000시즌 신인부터 마스크를 써왔던 김상훈이 버티고 있었다. 공격력은 갖추었으나 포수 수비력이 미치지 못했다. 2005년 송산이 입단했을때는 2인자 자리도 위태로왔다. 2008년 이성우가 SK에서 이적했을때도 2인자를 놓고 다투어야했다.
입단 이후 5년동안 1군 출전수가 71경기 밖에 되지 않았다. 2008년 김상훈이 부상을 당하자 106경기에 출전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2009년은 김상훈이 복귀하면서 57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러다 김상훈이 어깨부상을 당하자 2011년 다시 주전 마스크를 썼다. 김상훈의 위치에 따라 경기출전이 결정되는 신세였다.
이제는 달라졌다. 박기남은 7월까지는 말 그대로 백업선수였으나 8월들어 8경기에서 20타수 7안타 8타점 4득점으로 활약하고 있다. 알토란 같은 타점이었다. 차일목은 후반기 3할7푼5리(40타수 15안타) 11득점 4타점의 우등성적표를 냈다. 김원섭은 단 3경기만 빠졌고 팀내 유일한 3할(.305)타자이다. 그리고 팀내 타점 1위(47개)이다.
이들은 이범호 김상현 최희섭이 빠진 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KIA 타선이 어려움속에서도 5연승할 수 있었던 절대적 이유가 되고 있다. 이들이 없었다면 후반기 KIA의 상승세도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조연이 아닌 주연들이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