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인가 자극인가, 고의4구에 엇갈리는 희비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2.08.12 09: 02

앞타자가 고의4구로 걸어나가며 선택받는다. 상대 배터리의 선택을 받는 타자의 심정은 어떠할까. 타자 출신 야구인은 "감이 좋을 때에는 잘됐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화난다"고 했다. 이른바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기분이다.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 고의4구 이후 한 방이다. 지난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SK 박정권이 바로 앞 타순의 이호준이 고의4구로 걸어나간 이후 만루홈런을 폭발시켰고, 넥센 유한준은 10~11일 목동 한화전에서 연이틀 앞타자가 고의4구로 나가자 보란듯 적시타를 작렬시켰다. 과연 어느 팀의 누가 고의4구에 울고 웃을까.
▲ 고의4구 얼마나 효용성 있나

12일 현재까지 치러진 페넌트레이스 379경기에서 고의4구는 총 112개가 나왔다. 3.4경기당 하나꼴로 나왔는데 하루 4경기가 치러지니 하루에 한 번은 볼 수 있는 장면. 그 중에서 1~5회에 나온 고의4구는 14개 뿐이다. 고의4구 98개가 6회 이후 승부처에서 나왔다. 이 가운데 20개는 10~12회 연장전에 나온 것이다. 1점이라도 줘서는 안 줘야할 상황에선 불기피하게 베이스를 채워 포스아웃 상태로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 그 카드가 바로 고의4구다.
과연 고의4구는 의도한 대로 잘 흘러갔을까. 112개의 고의4구 이후 타석 결과는 92타수 22안타로 타율은 2할3푼9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볼넷 16개, 희생플라이 3개, 스퀴즈번트 1개를 포함할 경우 고의4구 이후 출루 또는 득점으로 이어진 확률은 37.5%로 상승한다. 고의4구 이후 터진 홈런은 3개였고, 끝내기 안타 및 볼넷도 4차례 있었다. 고의4구 이후 수비하는 입장에서 가장 크게 기대할 수 있는 병살타는 3개로 많지 않았다.
▲ 고의4구로 본 8개팀 득과 실은
고의4구로 가장 재미 본 팀은 롯데였다. 롯데 마운드는 고의4구 14개를 줬는데 이후 12타수 1안타 2볼넷 1병살타로 잘 막았다. 고의4구 이후 실점은 1점으로 가장 적다. 공격에서도 고의4구 이후 15타수 4안타로 타율은 2할6푼6리이지만 그 중 2개가 끝내기 안타였다. KIA도 고의4구를 잘 활용했다. 수비에서 고의4구 11개를 줬지만, 8타수 1안타 3볼넷으로 막아내 롯데 다음으로 적은 2실점밖에 하지 않았다. 공격에서도 고의4구 이후 12타수 4안타 타율 3할3푼3리에 5타점을 올렸다.
SK는 고의4구 의존도가 가장 높은 팀이었다. 투수들이 가장 많은 24개의 고의4구를 기록했다. 결과는 19타수 3안타 피안타율 1할5푼8리로 성공적이다. 7실점했지만 그만큼 고의4구 작전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공격에서는 14개의 고의4구를 얻었으나 12타수 2안타 2볼넷으로 재미를 못봤다. 두산도 고의4구 13개를 준 뒤 11타수 3안타로 막았으나 실점이 6점이나 된다. 공격에서는 가장 적은 8개의 고의4구를 받았는데 7타수 2안타에 끝내기 안타가 하나 있을 뿐이다.
반대로 삼성은 마운드에서 고의4구 11개를 준 뒤 9타수 3안타 2볼넷 3실점으로 좋지 않았지만 공격에서 13타수 5안타로 가장 높은 3할8푼5리의 타율에 9득점을 올렸다. 넥센도 리그에서 가장 적은 5개의 고의4구를 한 뒤 3타수 2안타 2볼넷로 흔들리며 결과가 안 좋았다. 반면 공격에서는 고의4구를 받은 뒤 13타수 4안타 타율 3할8리에 10타점으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LG는 공격과 수비 모두 고의4구에 발목이 잡혔다. 공격에서는 가장 많은 19차례 고의4구를 얻어냈지만, 13타수 1안타 타율 7푼7리로 철저하게 막혔다. 수비에서도 고의4구 18개로 두 번째 많은데 17타수 7안타로 피안타율이 4할1푼2리에 달한다. 그 중에는 홈런도 2개나 포함돼 있으며 고의4구 이후 가장 많은 11실점을 허용했다.
한화는 고의4구 허용이 16개인데 13타수 3안타 피안타율 2할3푼1리로 막았으나 실점도 6점이다. 공격에서는 9개의 고의4구 이후 7타수 무안타에 볼넷 2개에 머물렀다. 고의4구 이후 유일하게 안타가 없는 팀이다.
▲ 고의4구에 자극받은 타자, 재미본 투수
고의4구에 가장 강한 타자는 넥센 유한준이었다. 유한준은 4차례나 앞타자가 고의4구로 걸어나갔는데 4타수 3안타 6타점으로 자신을 선택한 상대 배터리에 제대로 앙갚음했다. 그는 "고의4구 이후에 들어선다고 특별히 의식하는 건 아니다. 1루가 비어 있으면 당연히 상대팀은 베이스를 채워야 한다. 그것에 자극받아 무조건 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상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노림수를 미리 생각하고 들어간다"며 나름의 노하루를 밝혔다. 강정호가 리그에서 가장 많은 7개의 고의4구를 받았는데 6번 타순에서 유한준이 뒷받침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롯데 강민호도 끝내기 안타 포함 2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으로 고의4구 이후 만나서는 안 될 타자로 거듭났다. 삼성 최형우도 4차례나 앞타자 고의4구 이후 타석에 들어섰는데 스리런 홈런 포함 2타수 1안타 1볼넷 1희생플라이로 강세를 보였다.
물론 고의4구로 재미를 본 투수들도 있다. 한화 류현진은 5개의 고의4구를 허용했으나 5타수 1안타로 막았다. 지난 10일에 유한준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기 전까지 4타수 무안타로 고의4구 이후 높은 집중력을 자랑했다. KIA 서재응과 오승환도 나란히 4타수 1안타로 고의 4구를 활용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롯데 김성배도 볼넷 1개를 줬지만 고의4구 이후 병살타 1개 포함해 2타수 무안타로 막았다. SK 박희수도 2타수 무안타 역투를 펼치며 고의4구 이후에도 강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고의4구 이후 움츠러든 타자들도 있었다. 고의4구에 울고만 있는 LG는 서동욱과 김태군이 공격에서 나란히 3타수 무안타로 상대 배터리로부터 집중 표적이 됐다. KIA 김주형도 고의4구 이후 3타수 무안타로 막혔다. 롯데에서는 박종윤·정보명·신본기 모두 2타수 무안타로 침묵했고, 한화 최진행과 이대수도 나란히 2타수 무안타로 아쉬움을 삼켰다.
투수 쪽에서는 지난 10일 박정권에게 그랜드슬램을 맞은 두산 김승회가 2타수 2안타 5실점으로 가장 안 좋았다. SK 이재영도 3타수 2안타에 볼넷과 스퀴즈번트로 고의4구 이후 3실점했다. LG 우규민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7개의 고의4구를 기록했다. 한 차례 고의4구 직후 교체된 것을 제외하면 6타수 2안타로 피안타율 3할3푼3리에 2실점하며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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