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드라마 '응답하라1997', 만약 지상파였다면...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2.08.12 09: 40

tvN '응답하라1997'이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케이블 드라마라면 아직도 B급이라 치부하는 세상 어떤 이들에게 보기 좋게 한방을 먹이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지상파에 편성됐더라면 그 반향이 얼마나 거대했을지,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작품이다.
'응답하라1997'은 제목 그대로 1997년 부산을 배경으로 개성이 다른 고등학생 6인방의 열병 같은 시기를 그린다. 당대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아이돌그룹 H.O.T와 젝스키스를 향한 치열한 '팬질', 시원(정은지 분)과 윤제(서인국 분)의 풋사랑, 준희(호야 분)의 윤제를 향한 동성애, 암 선고를 받는 아버지와 가족들의 뭉클한 사연 등이 촘촘한 짜임을 자랑한다. 연기 경험이 아예 없었거나 일천했던 아이돌들이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보드라운 손길에 의해 꽤나 그럴싸한 연기자로 탄생했다.
영화 '써니'와 '건축학개론'으로 이어진 복고 코드의 성공, '응답하라1997'이 복고가 사랑받는 작금의 트렌드에 편승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방송 초반부터 이토록 각광받게 된 요인을 단지 시류(時流)를 잘 만난 것으로만 치부하기엔 드라마 자체가 가지는 '힘'이 너무도 크다. 실제 '팬질'에 탐닉했던 스태프로부터 시작된 1997년 팬덤에 대한 철저한 고증, 한 명의 캐릭터도 소홀히 하지 않고 챙겨가며 살려주는 인간미 가득한 대본과 연출력, 또 소품 하나, 배경 한 곳까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들고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잡아타고 싶게 만드는 마력까지.. '응답하라 1997'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시청률도 순항이다. 지난 7일 방송된 5, 6회가 평균시청률 1.6%, 최고시청률 2.1%(TNms 기준)에 달했다.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눈에 띄는 성적표다. 게다가 오프라인 입소문과 온라인 장악력이 자꾸만 커져가면서 향후 흥행에도 청신호가 켜진 분위기다.
케이블 채널의 개국 이후 수십억 원 제작비와 배우 개런티를 투자한 지상파 드라마의 뺨을 후려갈길 만큼 웰메이드 작품으로 손꼽힌 드라마들이 몇 편 있다. '응답하라 1997'은 (드라마 전문 인력이 아닌) 지상파 예능국 출신 PD와 버라이어티 작가의 만남, 케이블 채널의 한계를 딛고 탄생한 작품이라기엔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또 한 번 지상파를 머쓱하게 만드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을 연출하고 '1박2일'을 이끌며 예능에서 날고 기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이처럼 위트 넘치면서도 결이 고운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사실 대중의 예상과는 다르게 케이블 드라마의 제작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지상파를 등지고 케이블로 옮겨간 신 PD나 이 작가가 그 곳에서 만난 것 지상파 대비 적은 제작비와 인력이었다. 배우 캐스팅도 난관 중의 하나였다. 소위 A급 배우들은 손사래를 쳤고 심지어 KBS 시절 의리를 생각해 카메오 제의를 넣었던 톱 MC에게서도 '출연불가' 답변이 돌아왔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응답하라 1997'은 지상파 보란 듯 예쁜 때깔과 완성도를 자랑한다. KBS를 떠나 새 둥지를 튼 신 PD와 이 작가도 제대로 체면치레를 한 모습이다. 수십억 원 제작비를 투입하고 이른바 '돈질'로 뚝딱 만들어낸 함량 미달 작품들은 '응답하라 1997'의 행보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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