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표정과 울림 있는 목소리로 스크린에 떴다 하면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 배우 임원희가 그의 ‘주종목’인 코미디로 돌아왔다.
임원희는 어설픈 독립투사부터 소름끼치는 사이코 살인마까지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였지만, 코미디 장르에서 유독 큰 사랑을 받아왔다. 2000년 ‘다찌마와 리’를 시작으로 2002년 ‘재밌는 영화’, 2007년 ‘식객’, 2008년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11년 ‘로맨틱 헤븐’에 이르기까지 진중한 표정과 목소리를 앞세운 ‘임원희표’ 코미디 연기는 정형화된 코미디 연기 틀에서 벗어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임원희는 코미디만 고집해서 한 건 아닌데도 이상하게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며 이번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8일 개봉)를 통해 '또 코미디야?'가 아닌 '꽤 잘했네'라는 평가가 듣고 싶다고 했다.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듯한 느낌이 있다.
▲ 꼭 코미디만 고집해서 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지만 배우라는 게 선택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악역을 해야겠다'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변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객 분들이 '임원희는 코미디 연기 말고 다른 연기도 잘하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내 책임이자 숙제인 것 같다. 이번 영화를 보시면서 '쟤 또 코미디야?'가 아니라 '꽤 잘했네'라는 평가가 듣고 싶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장규성 감독 데뷔작 ‘재밌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출연 결정에 감독과의 의리도 좀 작용했나?
▲ 오랜만에 같이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시나리오가 안 좋은데 의리로 작품을 하는 배우는 아마 없을 거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장규성 감독과 다시 뭉쳐서 좋았다. ‘재밌는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수로와 한 번 더 만났는데 ‘재밌는 영화’ 때보다 흥행은 좀 더 잘됐으면 좋겠다.(웃음)
-김수로에게 라이벌 의식은 느끼지 않았나?
▲ ‘수로 분량 꽤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들긴 들었다.(웃음) 영화를 보면서 ‘저 친구 잘했네’하며 씨익 웃고 하는 선의의 경쟁은 당연히 있었다. 수로 씨가 ‘아씨’로 말장난 애드리브를 치는 부분과 ‘쥐가 나아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하는 대사를 칠 때는 기가 막히더라.

-주지훈 첫인상은 어땠나
▲ 처음 보고 '역시 모델은 모델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왜 알면서도 느끼는 거 있지 않나. 생각보다 까무잡잡했는데 정말 멋있었다. 역시 모델 출신은 다르더라.
-주지훈 씨와 붙는 신이 유독 많다. 촬영 중 겪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
▲ 서로 거지꼴이니까 서로를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훈 씨가 ‘형 정말 거지 같아요’ 그런 식으로 농담하고.(웃음) 극중에서는 날이 갈수록 거지가 돼가는 콘셉트지만 촬영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니까 지훈 씨가 ‘형 오늘은 더 거지 같은데요’, ‘오늘은 좀 심하네요’ 이러면서 친해졌다.
-적은 분량이 아쉽지는 않나?
▲ 난 편집이 덜된 편이라더라.(웃음) 찍은 분량을 다 살리자고 하면 영화가 산으로 가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크게 불만은 없다. 내가 안 나오는 장면은 주지훈도 안 나온다.(웃음)
-애드리브인지 아닌지 구분 안 되는 장면이 많더라.
▲ 계산되지 않은 연기를 하면 먹히는 경우가 드물다. 촬영 당시에 말초적인 재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시나리오는 과학이기 때문에 붙여놓고 보면 못 녹아드는 경우가 많다. 많은 분들이 애드리브하면 대사 애드리브를 생각하시는데, 난 대사가 아닌 표정 같은 걸 애드리브라 생각한다. 분장을 했을 때 생각보다 웃기면 그 자체로 먹고 들어가는 게 있지 않나. 나한텐 그게 애드리브다. 순간순간 상황에 표정을 지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도 자연스런 애드리브라 생각한다. 근데 그걸 또 과하게 이용하면 역효과가 난다. 코미디가 그래서 어렵다.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인가?
▲ 미리 생각하고 가기 보다는 캐릭터에 대한 마음을 담고 현장 분위기에 그날 그날 충실한 편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마음이 갇힌다. ‘난 이렇게 했는데 왜 상대방은 이렇게 하지?’라는 생각에 갇히는 거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또 감독님의 생각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열려 있어야 한다. 캐릭터에 대한 건 갖고 가되 현장에 맞추는 게 나은 것 같다. 그걸 애드리브라고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것 같다.

-코믹연기 선배로서 본 주지훈의 코믹연기는 어땠나?
▲ 같은 배우로서 평가하긴 좀 그렇지만 되게 잘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걱정도 했지만 훨씬 잘했다. 노력을 많이 했고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백점 만점에 80-90점을 주고 싶을 정도다. 물론 코미디 연기의 끝은 없으니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많이 고심했고 잘했다.
-백윤식, 변희봉, 박영규 등 대선배들과 함께 작업한 느낌은?
▲ 신기했다. 그 세분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대단한 일 같다. 기대가 컸다. 내가 선배님들과 같이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배우는 거다. 본 받기 바빴고, 받아먹기 바빴다. 선배님들이 각자의 몫을 딱딱 해내시는 걸 보며 느낀 게 많다.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얻고 싶은 게 있다면?
▲ 관객 분들이 아직도 2000년에 나온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 이미지를 많이 기억해 주신다. 그 영화가 2008년 극장판으로 개봉해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은 것 같다.(웃음) 그 이미지를 내가 빨리 상쇄시키지 못한 건 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다찌마와 리’를 능가하는 역할을 아직 못 만난 거 같다. ‘나는왕’이 잘돼서 앞으로는 ‘해구’라고 불리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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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