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아픔을 되새긴 홍명보호의 주역들이 신화를 창조했다.
2012 런던올림픽서 '영원한 숙적' 일본을 제압하고 조국에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안긴 영광의 태극 전사들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은 남자축구 3-4위전서 일본에 2-0의 완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지난 1948년 런던올림픽을 통해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이후 64년 만에 획득한 귀중한 동메달이었다.

베이징의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4년 전 당시 코치였던 홍명보 감독은 박성화 감독을 보좌하며 2회 연속 올림픽 8강 진출을 노리는 대표팀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조별리그 2차전서 이탈리아에 0-3으로 완패를 당하는 등 1승1무1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좌절을 맛봤다.
올림픽 대표팀의 실패의 과정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봤던 홍명보 감독은 일찌감치 한국 축구 사상 첫 메달 획득이라는 푸른 청사진을 그렸다. U-20 월드컵 8강의 신화는 그 화려한 시작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영광의 18인 중 런던올림픽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를 꼽으라면 와일드 카드 3인방 박주영(아스날)-김창수(부산)-정성룡(수원)과 홍명보호의 '두 기둥' 기성용(셀틱)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구자철을 제외한 4명의 선수들은 베이징대회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쓰디쓴 아픔을 맛봤던 비운의 주인공들이었다.
박주영은 베이징올림픽 조별리그 1차전이었던 카메룬과 경기서 골을 터뜨리며 1-1 무승부를 이끈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정성룡도 이탈리아전서 3실점을 허용하며 0-3 대패의 멍에를 썼다.
당시 19살의 덜 여물었던 기성용도 중원을 조율했지만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고, 김창수는 후배 신광훈에게 밀려 그라운드를 밟아보지도 못한 채 짐을 싸야 했다.
첫 올림픽 무대는 그렇게 아픔으로 끝나며 절치부심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베이징서 코치와 선수로 연을 맺었던 박주영-김창수-정성룡은 홍명보 감독으로부터 와일드 카드의 주인공으로 낙점받았고, 홍명보호에서 주축 멤버가 아니었던 기성용도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당당히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4년 전 흘렸던 슬픔의 눈물은 기쁨의 환희가 되어 돌아왔다. 박주영은 조별리그 2차전이었던 스위스전서 헤딩 선제골 이후 침묵했지만 목숨보다 중요했던 일본과 3-4위전서 1골1도움을 기록하며 신화 창조의 주역을 자처했다.
김창수도 영국과 8강전서 부상을 입기 전까지 조별리그 1~3차전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한국을 8강행으로 이끌었고, 수문장 정성룡도 영국전서 페널티킥을 극적으로 막아내는 등 A대표팀 주전 골키퍼로서 위용을 올림픽 무대에서 유감없이 선보였다.
A대표팀의 중원사령관에서 홍명보호의 '키플레이어'로 거듭난 기성용도 매경기 중원을 장악하는 만점 활약을 펼치며 상대의 기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4년 전 조별리그 탈락의 좌절을 맛보며 남의 잔치를 지켜봐야 했던 이들은 런던에서 당당히 주연으로 거듭나며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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