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같은 승부수였다".
넥센 김시진 감독의 표현이다. 지난 11일 목동 한화전 6회 스퀴즈 번트 과정을 두고 한 말이다. 이날 넥센은 3-0으로 리드하던 6회 1사 1·3루에서 허도환이 바뀐 투수 양훈의 초구 낮은 공에 가까스로 번트를 댔고, 3루 주자 유한준이 홈을 밟아 쐐기점을 올렸다. 사실상 승부가 갈린 순간. 이튿날 김시진 감독은 "위험하지만 승부를 걸어야 했다. 도박 같은 승부수였다"고 말했다.
▲ 복불복의 100% 스퀴즈 번트

이날 김시진 감독의 스퀴즈 번트 지시가 더욱 도박 같았던 이유는 100% 스퀴즈였기 때문이다. 번트와 동시에 상황에 따라 3루 주자가 홈으로 달리는 세이프티 번트와 달리 이날 허도환의 100% 스퀴즈 번트는 투수가 공을 던질 때 3루 주자와 1루 주자가 이미 스타트 끊었고, 타자는 어떻게든 번트를 대야 했다. 전문용어로는'수어사이드(suicide)' 스퀴즈라고 한다. 스퀴즈 자체가 모 아니면 도의 승부수인데 이날 넥센처럼 100% 스퀴즈는 말 그대로 복불복이다.
김시진 감독은 "100% 스퀴즈는 어제 처음 사인냈다. 1·3루 주자 모두 미리 뛰었고 타자는 공이 땅에 오든 공중에 오든 맞혀야했다. 만약 볼이 떠버리면 무조건 더블플레이가 된다"며 "스퀴즈 사인을 낼 때에는 주자가 센스 있을수록 유리하다. 하지만 어제(10일)처럼 발 느린 주자들이 있으면 100% 스퀴즈를 할 수도 있다. 상대팀에서도 미리 생각하지 못한 틈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1루 주자 송지만과 3루 주자 유한준의 그렇게 빠르지 않은 발을 고려할 때 이날 넥센의 스퀴즈 번트는 상대팀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니었다. 하지만 허를 찌르는 스퀴즈로 유한준이 쐐기 득점을 올리고, 송지만은 1루에서 단숨에 3루까지 내달리며 한화를 압박했다.

▲ 스퀴즈, 상대 투수도 고려한다
김 감독은 "스퀴즈는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욕먹기 딱 좋다. 그래서 스퀴즈가 감독에게는 가장 어렵다"고 했다. 물론 적중했을 때 희열은 짜릿함 그 자체다. 김 감독도 이날 스퀴즈 성공 후 덕아웃에서 박수를 치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반대로 당하는 팀은 맥이 빠진다. 올해 스퀴즈 성공으로 득점한 경우는 총 20경기에서 21차례 있었다. 성공한 팀이 17승2패1무로 높은 승률을 자랑했다. 야구에서 분위기와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나는 대목이다.
스퀴즈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상대 투수가 누구냐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김 감독은 "제구력 좋은 투수들에게 스퀴즈 번트를 대기 좋다. 제구가 불안한 투수들의 변화구가 원바운드 되거나 공이 높이 뜨면 번트를 대기 어렵다. 두산 이혜천 같은 투수에게는 쉽게 스퀴즈 사인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혜천을 상대로 스퀴즈를 시도한 팀이 있었다. 양승호 감독의 롯데가 지난 5월27일 잠실 두산전에서 4회 1사 1·3루 상황에 박종윤이 이혜천으로부터 스퀴즈 번트로 쐐기점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 스퀴즈 성공·허용으로 본 8개팀 희비
올해 가장 많은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킨 팀은 롯데와 SK다. 나란히 5차례 스퀴즈 번트로 득점을 올렸고, 그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넥센과 LG도 4차례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키며 3승1패를 거뒀다. 그 다음으로 두산이 2차례, 삼성이 1차례로 뒤를 잇는다. 삼성은 지난 6월9일 문학 SK전 9회 무사 3루에서 김상수의 스퀴즈번트 안타로 결승점을 내며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외에 KIA와 한화는 유이하게 스퀴즈 번트가 없다.
반대로 스퀴즈 번트로 가장 많은 실점을 한 팀은 어딜까. 바로 LG였다. LG는 스퀴즈 번트 6차례로 6실점했다. 그 중 4개 롯데전에서 나왔다. 스퀴즈 번트로 실점한 6경기에서 LG는 1승4패1무로 아쉬움 삼켰다. 이어 삼성·KIA·한화가 3차례 스퀴즈 번트로 실점하며 그날 경기에서 모두 패했으며 두산·SK도 2차례씩 스퀴즈 번트로 실점하며 졌다. 롯데·넥센은 스퀴즈 번트 허용이 한 차례로 가장 적었다. 그 경기에서도 넥센은 승리했다.
한편, 스퀴즈 번트를 가장 많이 성공시킨 타자는 SK 임훈과 두산 정수빈으로 2차례씩 스퀴즈 번트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특히 임훈은 지난달 24일 대구 삼성전에서 연장 10회 1사 1·3루에서 오승환을 상대로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키며 결승타를 기록했다. 반대로 스퀴즈 번트 허용이 많은 투수는 LG 벤자민 주키치와 KIA 진해수로 2차례씩 허용했다. 한화 류현진은 2차례 스퀴즈 번트를 홈에서 직접 아웃시켰는데 상대가 그에게 느끼는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나타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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