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작품을 보고 권력자들도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허구를 이용하고 권력자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팩트를 조작한다’는 생각이요. 그러한 구도가 재미있었고, (관객들에게도)보였으면 좋겠습니다.”
2007년 LG아트센터 초연 이후 5년만에 국내 무대에 돌아온 연극 ‘필로우맨’의 연출을 맡은 변정주 연출가는 14일 열린 프레스콜 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서로 대립이 되는 각도가 획일적이지 않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성을 주목해서 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극 ‘필로우맨’은 잔혹한 아동 살인 사건에 얽힌 작가와 지적 장애를 가진 그의 형, 그들을 취조하는 형사들의 진실공방을 그리고 있다. 살인사건을 취조하는 전체의 흐름과 주인공이 끝끝내 지켜나가고자 하는 이야기들의 병렬식 투입은 인간세상의 어두운 면을 담아낸다. 이에 대해 변 연출은 “내용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이게 권력의 속성인 것 같다”며, “이 작품도 권력이라는 것이 다 그렇다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무게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만든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공연의 1막 중 주인공 ‘카투리안’의 대사에도 있지만, 사실 작가라는 사람은 어떤 메시지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데에 있어 정치적이거나 그런 요소들이 들어올 뿐이라는 생각을 이번 작품 하면서 느꼈어요. 저도 작품을 준비하면서 무엇이 이 작품을 제일 재미있게 할 수 있나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결론적으로는 ‘카투리안’ 처럼 무언가 이야기하려는 작품은 아닌데 관객들은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하는, 이런 것이 만드는 사람과 관객과의 소통이 아닐까 싶어요.”

연출자 변정주는 ‘날 보러와요’와 같은 스릴러부터 ‘마이 스케어리 걸’과 같은 로맨스, ‘레인맨’과 같은 휴먼 드라마 등 장르와 소재를 불문한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랑과 이해, 두려움 등 인간 내면의 정서를 통찰하는 안목을 보여왔다. 그런 그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으로 ‘캐스팅’을 꼽았다.
“아무리 제가 연출적으로 집중시키려 해도 배우의 역할이 굉장히 큰 공연이어서 캐스팅 작업이 가장 중요했어요. 2시간반이라는 러닝타임의 대사를 외우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배우들과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어 두 번째로는 번역을 꼽으며, “번역 과정도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지 않도록 작업하면서 번역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영어 텍스트에 있는 것들, 그 리듬을 살리면서 최대한 한국말에 가깝게 하는 작업이 어려웠고 부족하죠. 앞으로도 꾸준히 보강해나갈 예정입니다”고 전했다.
공연은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카투리안’이 관객에게 들려주는 잔혹하지만 환상적인 이야기 속 이야기를 ‘영상’으로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무대 집중력을 위해 몇 개의 에피소드는 영상으로 하는 것이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라 생각했다”며, “상상력을 닫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극에 나오는 여덟 개의 ‘이야기’를 배우들의 말에만 의지해서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고, 관객에게 쉽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미술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관객과 만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포장이 필요한데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미션 타임 포함 2시간 45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 대해서도 “연극의 절대적인 길이보다는 이 작품을 리듬감 있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러닝타임은 두번째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취조실에 끌려와 살인범으로 몰리는 순간에도 형과 자신의 목숨보다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들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작가 ‘카투리안’ 역에는 김준원이 캐스팅 됐다. 미리 정해둔 자신만의 결론을 가지고 사건을 구성하고 처리하는 냉정한 수사반장 ‘투폴스키’ 역에는 손종학이, 동생이 쓴 이야기를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며 그것을 유일한 기쁨으로 여기는 카투리안의 형 ‘마이클’ 역은 이현철이 연기한다. 말이나 생각보다 주먹이 앞서나가는 형사 ‘에리얼’ 역으로는 조운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필로우맨’은 9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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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씨어터컴퍼니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