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불펜투수들을 총동원하는 SK를 가리켜 '벌떼야구'라고 불렀었다. 타자에 따라 현란하게 바뀌는 투수운용은 SK만의 장기였다. 그리고 당시 SK 뒷문을 책임지던 정대현은 벌떼중의 최고라는 의미에서 '여왕벌'이라는 벌명이 붙었다.
그렇다면 올해 가장 많이 투수를 기용하는 팀은 어딜까. 답은 롯데다. 롯데는 14일까지 올 시즌 96경기를 치렀다. 올해 롯데투수 가운데 1군 마운드에 한 번이라도 등판했던 투수는 20명, 8개구단 가운데 2번째로 적다. 그렇지만 20명의 투수가 등판했던 경기수를 모두 합치면 431경기로 전체 1위다. 경기당 등판 투수수도 4.49명으로 1위, 선발투수를 제외한 불펜투수 등판 회수도 경기당 3.49명으로 가장 많다.
지난해와 비교해 본다면 올해 달라진 롯데의 마운드 운용을 실감할 수 있다. 롯데는 작년 133경기에서 20명의 투수가 총 552경기에 등판했다. 경기당 등판투수는 4.15명으로 전체 5위였다. 당시 경기당 등판투수 1위는 넥센으로 4.58명이 마운드에 올랐다. 올해 롯데와 비슷한 수치다.

예전 SK가 '벌떼야구' 였다면 올해 롯데는 양승호 감독이 변화무쌍한 마운드 운용을 보여주고 있으니 '양떼야구'라 부를 만하다. 양 감독은 이미 올 시즌 중반부터 "올해 우리 야구는 불펜야구다. 좀처럼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마운드가 안정됐다"는 말을 여러차례 하고 있다.
사실 롯데가 불펜야구를 하게 된 것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양 감독 스스로 "내 야구 스타일은 선발야구"라고 말하지만 올해 선발진 사정이 여유롭지 못하다. 유먼이라는 롯데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투수가 들어왔지만 나머지 선발투수들의 이닝소화 능력이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현격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타선까지 약화되면서 접전이 많아졌다. 자연히 불펜야구를 할 수밖에 없다.

'양떼 야구'의 핵심은 좌완 이명우-우완 최대성-사이드암 김성배다. 사실 시즌 전 전력구상에 포함되지는 않았던 3명의 선수가 지금은 롯데를 이끌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최다등판 1,2,3위를 롯데투수 3명이 휩쓸고 있다. 이명우가 58경기로 1위, 최대성이 54경기로 2위, 김성배가 53경기로 3위다. 등판 경기수만 놓고 따진다면 롯데의 20명 투수 가운데 3명이서 38.2%인 165경기에 나섰다.
3명의 등판경기가 많지만 경기당 투구이닝은 모두 1이닝이 되지 않는다. 이명우가 41⅓이닝, 최대성이 51⅔이닝, 김성배가 43⅓이닝을 소화했다. 이들 3명의 관리 기준은 출전경기 보다는 투구수다. 이명우는 경기당 11.1개, 최대성은 14.6개, 김성배는 12.9개를 기록했다. 롯데 가득염 불펜코치는 "몸을 풀 때 최대한 적은 공으로, 대신 높은 집중력으로 준비하도록 지시한다. 투구수를 정확하게 체크해 그에 따라 불펜은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전 '여왕벌' 정대현이 이젠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그가 '여왕 갈매기'가 될 수 있을까. 일단 롯데의 주전마무리는 여전히 김사율이다. 그렇지만 가래톳 부상이 심해지며 약 5일가랑 휴식을 취해야 한다. 양 감독은 "정대현이 잘 던져주고 있다. 김사율이 돌아오기 전까지 최대성과 김성배가 함께 집단마무리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투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김사율이 건재하기에 당분간 정대현은 '양떼'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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