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없어도 잘 돌아가더라."
롯데 홍성흔(35)이 프로야구의 냉정한 현실을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현실의 냉정함과 절심함이 담겨 있었다.
지난 14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SK와의 홈경기에 앞서 락커룸으로 향하던 홍성흔은 "똑딱이가 다됐더라"는 양승호 감독의 의미심장한 말에 걸음을 멈췄다.

양 감독은 "평소 주자가 있건 없건 자기 스윙을 시원하게 하던 홍성흔이 요즘은 볼카운트가 몰리면 톡 갖다 대더라"며 "홈런수가 팍 떨어졌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홍성흔은 이를 인정하며 "투스트라이크에 주자가 2루에 있으면 팀을 위해 교타자로 변신한다"면서도 "대신 타점은 꾸준하게 올리고 있다. 팀도 이대호가 빠져 걱정을 많이 했지만 잘하고 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이어 "야구판 생리가 그렇더라. 누가 없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나 역시 내가 빠져 팀을 걱정했는데 오히려 더 잘하더라. 김주찬이 '형이 없으니 더 잘한다'고 구박을 할 정도"라는 홍성흔은 "팀이 잘해서 기분은 좋은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감독님도 선수시절 그러셨죠?"라고 웃어 보였다.
물론 "현역을 4년 밖에 안해서 모르겠다"는 양 감독의 대답에 웃음으로 끝난 대화였지만 베테랑의 심리와 프로의 냉정함, 그 속에 녹아 있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홍성흔은 지난 6월 늑골에 실금이 가는 골절에 의한 통증으로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7월에야 복귀했지만 이후 홈런이 잘 터지지 않고 있다. 부상 회복이 완전하지 않아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후보에서도 사퇴했을 정도. 그렇지만 홍성흔 없이도 롯데는 4강 전력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일까. "머리모양을 바꾸는 것은 '약해졌다'는 뜻일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자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평소 머리 염색을 즐기고 스크래치로 포인트를 주곤하던 홍성흔이었다. 특히 머리 염색에 대해 "삭발보다 더 비장할 수 있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야구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남다른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성흔에게 올 시즌은 또 다른 경험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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