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역지사지 조언'과 홈런 선두 박병호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2.08.16 10: 59

"내가 투수라면 너에게 절대 치기 좋은 직구는 던지지 않을 것이다. 변화구도 노려 칠 수 있는 타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좋은 상황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 그러나 아무런 준비와 노력 없이 요행수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켜야 그만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내가 투수라면 너에게 직구를 던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김시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의 이야기는 거포 유망주였던 박병호(26)의 잠재력을 깨웠다.
지난 14일 목동 두산전을 준비 중이던 김 감독은 타자들의 타격 훈련을 지켜보던 도중 젊은 타자들이 범하는 우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이 오기도 전에 먼저 몸이 쏠려 달려들다가 수싸움까지 밀리면서 결국 삼진이나 범타로 물러난다는 이야기였다.

"초구부터 어떻게든 쳐보려는 의욕이 앞서 달려들려고 한다. 그러나 웬만큼 프로 물을 먹은 투수라면 그에 말려들지 않는다. 초구에 변화구가 오면 직구 때려내려다 헛스윙하고. 그러다가 졸지에 2스트라이크까지 밀리고. 이렇게 스윙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지 않겠는가".
'LG 시절 박병호가 그랬던 것 같다'라는 말을 건네자 김 감독은 "병호가 우리 팀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했던 이야기가 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LG 시절 박병호는 당겨치는 힘이 워낙 좋아 4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는 등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기복 있는 플레이로 출장 기회를 잃은 채 결국 지난해 7월 말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트레이드와 함께 잠재력을 폭발시킨 박병호는 현재 홈런 선두(24홈런)를 달리는 당당한 4번 타자다.
"내가 투수라도 병호한테는 직구를 쉽게 안 줄 것이다. 병호가 불리한 카운트라 생각이 많아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좋은 타이밍에서 변화구도 노려칠 수 있도록 해봐야 한다라고 했던 적이 있다. 1스트라이크-2볼 같은 상황에서 상대의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을 노려서 때려낸다면 더 좋은 타자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높거나 가운데로 몰린 직구를 좋아하는 타자가 대부분이다. 제대로 당겨치면 홈런이나 장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수 입장에서도 엄청난 구위를 갖추지 않은 이상 그런 공을 쉽게 줄 리가 없다. '박병호가 변화구를 공략함으로써 더욱 좋은 타자가 될 것이다'라는 김 감독의 조언. 박병호는 그에 맞게 성장했다.
최근 홈런포만 봐도 박병호가 변화구도 능수능란하게 때려내는 굴지의 슬러거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일 목동 LG전서 박병호는 상대 좌완 이승우의 체인지업을 공략해 시즌 22호포를 때려냈으며 7일 광주 KIA전에서는 앤서니 르루의 슬라이더를 한 손 팔로스윙으로 때려내며 24호 홈런을 기록했다. 웬만한 포크볼도 제대로 포착해 큼지막한 홈런으로 연결해내는 4번 타자 박병호다. 직구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변화구 유인구에 고개를 숙이기 일쑤였던 LG 시절 박병호는 이제 없다.
박병호가 변화구도 무리 없이 때려내면서 투수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확실히 커졌다. '어차피 변화구는 잘 못 치니까'라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구도 노려쳐라'라는 감독의 이야기에 확실히 깨닫고 괄목 성장한 박병호. 이는 LG 시절 박병호와 비슷한 케이스인, 만개하지 못한 타자 유망주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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