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은 3년 째 한국 무대에서 뛰면서도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두 자릿 수 승수를 올리지 못했던, 그저 ‘사람 좋은’ 투수였다. 또 한 명은 ‘메이저리거’ 명함 대신 ‘트리플A 베테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팀 창단 이래 최고의 외국인 듀오 자리에 도전하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외국인 원투펀치 브랜든 나이트(37)와 앤디 밴 헤켄(33)의 올 시즌 활약은 그야말로 알토란이다.
올 시즌 나이트는 11승 3패 평균자책점 2.32(1위, 16일 현재)를 기록하며 최고의 한 해를 구가 중이다. 지난해 최다패 투수(15패)이자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5회 고비에 힘겨워하던 나이트는 이제 없다. 151⅓이닝으로 8개 구단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 중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올 시즌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밴 헤켄의 활약상도 눈부시다. 밴 헤켄은 올 시즌 9승 4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하며 직구 구위 미달 현상을 보여주며 비춘 시즌 전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16일 목동 두산전에서는 7⅔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한국 무대 데뷔 이래 가장 뛰어난 투구를 선보이며 최근 당했던 옆구리 부상에서 완전히 나아졌음을 보여줬다.

이미 11승을 거둔 나이트에 밴 헤켄까지 다음 등판에서 10승 고지에 등정한다면 넥센은 2008년 우리 히어로즈 시절 장원삼(삼성, 당시 12승 8패 평균자책점 2.85)-마일영(한화, 당시 11승 11패 평균자책점 3.49) 듀오 이래 4년 만에 두 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게 된다. 2010시즌 후반기 애드리안 번사이드-크리스 니코스키 두 명의 좌완으로 운용했을 때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외국인 타자를 꼭 선수단에 가세시켰던 히어로즈인 만큼 두 외국인 투수의 동반 10승은 창단 첫 기록이 된다.

이전까지 히어로즈의 외국인 선수 두 명이 합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해는 2009시즌으로 꼽을 수 있다. 이제는 공식이 정립된 외국인 투수 대세론이 자리 잡던 분위기 속에서 히어로즈는 유일하게 클리프 브룸바-덕 클락 두 명의 타자로 한 시즌을 치렀다. 장원삼-마일영-이현승(두산, 현 상무) 좌완 트리오가 버티는 투수진의 힘을 믿고 있는 만큼 두 명의 타자가 150타점 이상을 합작하며 중심타선을 지켜주길 바라는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브룸바-클락 듀오는 기대치에 약간 못 미쳤다. 브룸바가 27홈런 86타점, 클락이 24홈런 90타점을 기록하며 도합 51홈런-176타점으로 단순 파괴력은 뛰어났다. 그러나 공수주를 두루 갖춰 외야진의 한 축으로 맹활약한 동시에 2할9푼의 타율로 나쁘지 않은 컨택 능력을 보여준 클락과 달리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아 수비 면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던 브룸바의 타율이 2할4푼5리에 그친 것이 뼈아팠다.
8월 하순까지 중위권 경쟁을 펼치던 히어로즈는 장원삼-마일영의 동반 슬럼프까지 맞물리며 결국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 6위(60승 1무 72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클락은 2010시즌 재계약에 성공한 반면 히어로즈 선수단의 모태인 현대 시절부터 대단한 파괴력을 발산하던 브룸바는 2009년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다.
3년 전 브룸바-클락 듀오에게 화끈한 불방망이를 기대했던 김시진 감독은 이제 나이트-밴 헤켄 듀오의 안정적인 투구에 위안을 삼고 있다. “우천 휴식이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이야기를 꺼낸 김 감독은 “추후 일정이 있을 때 뒤로 밀린 경기들이 빡빡하게 들어차 있는 것보다 로테이션 운용을 나이트-밴 헤켄 듀오 위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그만큼 이방인 선발 원투펀치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구 외적으로도 무난한 성품을 지녀 좋은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는 나이트와 밴 헤켄. 팀이 후반기 돌입 후 주춤하며 6위까지 떨어진 것이 아쉽지만 그들은 제 몫 이상을 확실하게 해내며 팀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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