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승이야 5승.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지난 17일 대전구장. 경기 전 한화 '괴물 에이스' 류현진(25)은 울부짖듯 외쳤다. 절친한 LG 외야수 이진영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너무 으쌰으쌰하지 말라"는 말에 발끈한 류현진은 "5승이다, 5승.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외쳤다. 류현진의 말대로 그는 이날 7이닝 2실점 퀄리티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팀 타선이 한 점밖에 얻지 못하는 바람에 패전투수 조건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팀은 8회 1점을 주고 1점을 냈지만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 1득점 이하 지원 10경기

류현진은 올해 20경기에서 10경기를 1득점 이하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무득점 4경기, 1득점 6경기. 1득점 이하 지원이 10경기로 리그에서 가장 많다. 류현진에게 2실점은 곧 승리 좌절을 의미했다. 류현진이 마운드를 지킨 130이닝 동안 한화 타선은 55득점을 올렸다. 9이닝당 평균 득점지원이 3.8점이지만 7득점 3경기와 8득점 1경기를 제외하면 9이닝 평균 2.3점에 불과하다. 제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 에이스라도 가혹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다승 1위 장원삼(삼성)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올해 14승으로 류현진보다 9승이나 더 거둔 장원삼은 선발로 던진 18경기 107⅔이닝 동안 타선으로부터 총 70득점을 지원받았다. 9이닝당 득점 지원이 평균 5.9점인데 1득점 이하 지원은 4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11승을 올린 삼성 외국인 투수 미치 탈보트는 106이닝 동안 86득점으로 9이닝당 득점 지원이 평균 7.1점에 달한다. 19경기 중 1득점 이하 지원은 4경기이며 오히려 5득점 이상이 8경기였다. 삼성은 리그 전체 1위팀이다.
▲ QS 최다패 5패
류현진은 20경기 중 15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했다. 브랜든 나이트(넥센·20경기) 다음으로 많은 기록. 그러나 퀄리티 스타트한 15경기에서 5승5패로 승과 패가 같다. 퀄리티 스타트 패배가 서재응(KIA)과 함께 가장 많은 투수가 류현진이다. 퀄리티 스타트를 하고도 승리하지 못한 것도 10경기로 최다. 더 놀라운 건 7이닝 이상 2자책점 이하가 11경기로 더스틴 니퍼트(두산·12경기) 다음으로 많은데 이 11경기에서마저도 4승3패에 노디시즌만 4경기였다.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나란히 15차례 퀄리티 스타트를 작성한 니퍼트와 벤자민 주키치(LG) 쉐인 유먼(롯데) 등과 비교하면 얼마나 불운한지 짐작할 수 있다. 퀄리티 스타트 15경기에서 니퍼트와 유먼은 각각 10승4패·10승1패를 거뒀고, 주키치는 9승2패를 올렸다. 7이닝 이상 2자책점 이하 경기에서도 니퍼트는 12경기 8승3패, 유먼은 8경기 7승, 주키치는 7경기 5승을 기록했지만 류현진은 11경기에서 4승3패에 불과하다. 다른 투수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 에이스의 불운은 팀의 실력
비록 5승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지만 올해도 류현진이 최고의 토종 투수라는 데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토종 투수 중 가장 많은 130이닝을 던졌고, 가장 많은 15차례 퀄리티 스타트에 리그 전체 통틀어 1위에 해당하는 탈삼진 153개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3.25로 전체 6위이자 토종 3위. 하지만 가장 많은 이닝을 압도적인 삼진으로 제압할 수 있는 투수는 류현진이 최고다. 그에게 부족한 건 단 하나 바로 승리 뿐이다.
이쯤되니 과연 승리가 투수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고 가치인지에 대한 의문이 붙는다. 투수의 승리는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자 아무리 0점으로 막아도 타선이 1점을 내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아무리 야구가 투수 놀음이라지만 타선이 터지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게 야구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는 사실을 2012년의 류현진과 한화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류현진이 선발등판한 20경기에서 한화는 8승12패로 승률 4할에 그치고 있다. 류현진의 불운이 바로 한화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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