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다. 어떤 이는 상처를 후벼 파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진실을 마주하며 아픔을 직시한다. 그리고 아픔을 견딘 만큼 그 사람은 한 단계 성장한다. 아니, 견디지 못해도 그 사람은 성장한다. 아픔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장한거나 다를 바 없다.
영화 '청포도사탕:17년 전의 약속'은 이처럼 과거 상처를 통해 한층 성숙해지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선주가 마음속 깊숙이 묻어뒀던 과거의 기억을 우연치 않게 꺼내보게 되면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려낸 것.
이처럼 변화해가는 선주 캐릭터의 연기는 배우 박진희가 맡았다. 그리고 지난 16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OSEN과 만난 박진희는 정말 영화와 닮아 있었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 그 역시도 성장해나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고 이유를 전해왔다.

"우선 여자 이야기였고 한국에서는 여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잖아요. 공감하는 부분들도 있었고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을 했죠. 그리고 김희정 감독님의 전작도 좋아했고 제가 원래 성장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선택하게 됐어요. 공감을 일으켰던 부분은 서른 살의 선주가 13살의 선주를 만나서 서른이 되고서야 그 어렸을 때의 기억을 깨고 한 번 더 성장한다는 측면이에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서른이 되면 좋은 어른이 됐을 것 같고 20대 초반에만 해도 서른 살은 되게 어른인 줄 알았는데 막상 서른이 돼보니 별반 다를 게 없더라고요. 지금도 달라진 게 없어요. 그래서 깨달았죠. 사람은 늘 성장하는 거구나. 예순이 돼서도 성장을 하는 거구나. 그런 것에 대한 공감이 있었어요."
극 중 박진희가 맡은 선주는 일탈을 모르는 평범한 여성이다. 항상 바르게만 살아왔고 흔히들 사는 무난한 삶을 살게 되는 인물. 그런 선주를 연기한 박진희는 어떤 삶을 걸어왔을까. 어릴 적 박진희는 어떤 아이였냐고 묻자 바르게 자라온 아이라고 답했다. 그리곤 가끔 일탈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한다며 진지하게 자신의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바르게 자라왔어요. 하지만 지금 제 직업이 직업인만큼 일탈한 적도 있긴 하죠. 일탈하고 싶으냐고요? 글쎄요. 사람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지루해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파도가 일라치면 두려워하고 견디지 못해 허우적거리죠. 무료하고 지루하다 생각하지만 큰 변화를 원하지는 않아요. 가보지 않은 길을 꿈꾸지만 마주쳤을 때는 두려워하죠.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가끔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 내가 안정적이구나'라고 마음을 먹으면 되는 거죠(웃음)."

박진희는 이번 '청포도사탕'을 통해 박지윤, 김정난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 촬영 전에는 인연이 없었던 세 사람은 영화 촬영을 통해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세 사람 모두 TV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봐왔기에 어색함이 없었던 것이 빠른 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서로 TV로 많이 봐왔던 사이였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았고 친해지는 데에도 별문제가 없었어요. 그리고 한 작품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기 때문에도 어색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지윤씨는 진지하고 내성적인 면도 있고 진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정난 언니는 내공이 있으면서 털털하고 쿨하지만 여린 사람이고요. 영화 촬영 때에는 정난 언니가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촬영 전이어서 지금 정난 언니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정말 좋아요. 저 '신사의 품격' 정난 언니 때문에 봤어요(웃음)."
흔히 배우들은 촬영의 가장 큰 장애물로 날씨를 꼽는다. 예측할 수 없는, 예측한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날씨이기 때문에 촬영에 임하는 배우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박진희 역시 이번 영화 촬영에서 제일 힘들었던 점으로 날씨를 뽑았다. 특히 촬영 당일, 그 지역 사상 유례없이 가장 세게 불었던 바람이 가장 힘들었단다.
"바람 때문에 고생했어요. 제가 연기인생을 15년 동안 해오면서 추워서도, 더워서도 고생해보고 수중촬영도 고생해보고 눈 때문에도 고생해보고 비 때문에도 고생했지만 바람 때문에 고생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영화 예고편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 장소가 태종대예요. 원래 그 장소가 바람이 보통 아니게 불긴 하는데 저희가 찍을 때 몇 년 만에 엄청나게 세게 불었던 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다행히 그 장면에서 절벽 안쪽에 있었는데 지윤씨는 절벽 바깥에 있어서 아슬아슬했어요. 저는 괜찮았는데 정말 바람에 몸이 흔들릴 정도여서 지윤씨가 어떻게 될까 걱정을 많이 했죠."

최근 박진희는 MBC MUSIC에서 하는 예능프로그램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이하 '그여남')'에 출연한 바 있다. 가수 존박과 팀을 이뤄 달콤한 노래를 만들어갔던 박진희는 사실 환경에 관련된 노래를 만들기 위해 '그여남'에 출연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처음에는 여자가 작사하고 남자가 작곡한다고 해서 환경에 관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조건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마침 촬영 시기가 봄이었고 꽃이 피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달콤한 시기에 사랑 노래를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제의가 들어와서 환경 노래는 못 만들었죠. 원래는 그런 의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아쉽긴 해요."
오랜 시간 연기생활을 해온 그녀지만 혹시 탐나는 캐릭터가 있을까. 넌지시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니 나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단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있다며 자신도 그러한 면이 분명히 있다고 악역에 대한 욕심을 내는 박진희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였다.
"착한 캐릭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악역이나 동네 양아치, 찌질이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왜 하는 일도 없고 꿈도 없는 사람 있잖아요. 사이코패스도 해보고 싶고요.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죠. 인간이 한 가지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런 면이 저한테도 분명히 있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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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