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고 데려왔는데 대학 때 별로 못 써먹으셨다고 아쉬워하셨어요. 먹튀였어요. 먹튀”.(웃음)
대학 시절 자신을 ‘먹튀’였다며 자학 개그를 펼친 그였으나 지금은 누가 뭐래도 국내 최고의 계투 요원이다. SK 와이번스의 필승 계투 좌완 박희수(29)가 동국대 시절 스승인 한대화 한화 이글스 감독의 시즌 40승을 가로막는 쾌투로 팀 승리 밑거름이 되었다.
박희수는 22일 문학 한화전에서 5-5로 맞선 7회초 마운드에 올라 2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탈삼진 2개, 볼넷 1개 무실점으로 한화 타선을 틀어막았다. 동점 상황인 만큼 별다른 기록은 주어지지 않았으나 올 시즌 홀드 1위(21홀드)를 달리는 투수다운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박희수다. 박희수-정우람-이재영으로 이어진 SK 계투진은 한화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연장 11회 6-5 끝내기 승리에 공헌했다.

경기 전 박희수는 스승인 한 감독을 찾아 인사했다. 한 감독과 간단한 인사 후 덕아웃으로 돌아오던 박희수는 “대학 때는 팔꿈치가 안 좋아서 제대로 못 했어요. 먹튀였지요. 먹튀”라며 웃었다. 한 감독도 “고교 시절 호리호리한 체구였지만 제구력이 좋아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입학 후 팔꿈치가 아파서 나랑 있을 때는 제대로 못 던졌다”라며 박희수의 대학 저학년 시절을 떠올렸다.
대전고 시절 제구력이 뛰어난 유망주로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표팀에도 승선했던 박희수는 SK 지명을 받았으나 곧바로 입단하지 않고 동국대로 진학했다. 그러나 선수 본인과 한 감독의 회고대로 저학년 시절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제 위력을 떨치지 못했고 한 감독이 2004년 삼성 수석코치로 이동한 뒤 고학년 시절 실적을 쌓았던 박희수다.
SK 데뷔 후에도 ‘제구는 뛰어나지만 구속이 빠르지 않은 좌완’으로 평가받았던 박희수는 스리쿼터에 가깝게 팔 각도를 내린 뒤 지금은 누가 뭐래도 정우람과 함께 SK를 대표하는 좌완 계투로 우뚝 섰다. 최고 140km 초반에 불과했던 직구 구속은 어느새 140km대 중후반으로 빨라졌고 또 하나의 결정구인 투심은 오른손 타자들을 상대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 투구내용의 바탕이 되었다.
시즌 중반 팔꿈치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고 7월 한 달간 평균자책점 4.91로 흔들리기도 했으나 누가 뭐래도 박희수가 SK 계투진의 핵심 축 중 한 명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10년 전 팔꿈치가 아파 본의 아니게 ‘동국대 먹튀’가 되었던 소년은 이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릴리프다.
farinellli@osen.co.kr
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