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퀴즈 번트에 엇갈린 한판이었다.
지난 22일 문학 SK-한화전. 경기는 연장 11회 번트 2개에 의해 갈렸다. 한화는 11회초 1사 3루에서 이여상이 3구째 스퀴즈 번트에 실패한 뒤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며 찬스를 날렸고, SK는 11회말 1사 만루에서 정근우가 2구에 기습적으로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키며 끝내기 득점을 만들었다. 6-5. SK의 승리, 한화의 패배였다.
▲ 만루에서 기습적인 스퀴즈

상황은 1사 만루. 정근우 타석에서 한화는 투수를 박정진에서 안승민으로 바꿨다. 정근우는 초구에 정상 타격 자세를 취했고 볼을 골라냈다. 하지만 2구째 공이 날아오는 순간 정근우는 기습적인 번트 자세로 전환했고, 3루 주자 임훈이 홈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안승민이 글러브로 공을 캐치한 후 홈에 토스하기 전 임훈이 홈을 밟았다. 이른바 100% 스퀴즈, 전문 용어로 수어사이드(suicide) 스퀴즈 번트라고 불리우는 플레이였다.
한화에서는 전혀 스퀴즈 번트에 대한 대응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상황이 만루였다. 포스 아웃 상황이기 때문에 병살타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1사 상황으로 공격측에서는 자칫 병살타가 돼 이닝 종료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실제로 올해 번트로 득점을 올린 24차례 플레이 중에서 이날 정근우를 제외하면 지난 4월15일 잠실 KIA전 LG 심광호밖에 없었다. 1·3루가 15번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3루가 6번, 2·3루가 1번 있었다.
하지만 SK 벤치는 과감하게 100% 스퀴즈 번트 사인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정근우는 "번트에는 자신 있었고, 편안하게 댔다"고 말했고, 이만수 감독은 "정근우의 작전수행능력을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정근우의 능력을 믿었다. 정근우는 지난 16일 사직 롯데전에서도 8회 무사 1·3루에서 정대현을 상대로 동점 스퀴즈 번트 성공시켰고 SK는 6-5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또 하나 3루 주자 임훈의 주력도 빼놓을 수 없다. 발 빠르고 센스있는 임훈이 3루 주자였기 때문에 정근우도 과감하게 번트를 댈 수 있었다.
▲ 감독에게 가장 어려운 스퀴즈
이날 SK처럼 100% 스퀴즈 번트도 있지만 과거에 비해 상당수 스퀴즈 번트는 세이프티 스퀴즈로 이뤄진다. 무조건 번트대는 게 아니라 타자는 스트라이크에만 번트를 대고, 3루 주자는 타자의 번트 타구에 따라 홈으로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작전. 스퀴즈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올해 번트로 5차례 득점을 올린 LG 김기태 감독이 "올해 한 번도 스퀴즈 사인을 낸 적 없다"고 말한 것도 바로 100% 스퀴즈를 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선수 개인의 판단과 세이프트 스퀴즈 사인들로 만들어진 득점이었다.
올해 번트로 4차례 득점에 성공한 넥센 김시진감독은 "스퀴즈는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할 경우 욕먹기 딱 좋다. 그래서 스퀴즈가 감독에게는 가장 어렵다. 도박 같은 승부수"라고 표현했다. 기본적으로 스퀴즈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하고, 타자와 주자 모두 작전수행능력과 센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상대 투수의 제구력도 고려해야 한다. 제구력이 불안한 투수일 경우 번트 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한화처럼 스퀴즈 번트 작전을 냈으나 선수가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작전이 노출돼 공격 흐름이 끊기는 위험성이 크다.
하지만 작전이 성공하면 그보다 짜릿할 수 없다. 올해 스퀴즈 번트 성공으로 득점한 경우는 총 23경기에서 24차례 있었다. 성공한 팀이 20승2패1무로 무려 9할이 넘는 높은 승률(0.909)을 자랑했다. 야구에서 분위기와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타내는 대목. 올해 가장 많은 7차례 스퀴즈 번트를 성공한 SK는 결승점을 뽑아낸 것만 2차례나 된다. 6경기에서 5승1무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반면 한화는 KIA와 함께 유이하게 스퀴즈 번트가 없으며 5차례나 스퀴즈 번트로 실점해야 했다. 8월 이후에만 3차례 당했고 그 중 2번은 결승점으로 이어지며 맥이 빠졌다. 결국 5차례 스퀴즈 번트를 당한 경기에서 전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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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