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신' 니퍼트의 왼팔, 롯데 작전 봉쇄하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8.24 21: 55

야구 용어 가운데 페이크 번트 슬래쉬(Fake bunt slash)라는 게 있다. 일본식 야구용어로는 버스터라고도 하는 이 작전은 번트를 대는 척 하다가 갑자기 강공으로 전환, 전진수비를 펼치던 내야수의 키를 넘기는 걸 목표로 한다. '갈기다'라는 의미를 지닌 슬래쉬에서 유래한 용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키가 큰 선수는 두산 베어스 더스틴 니퍼트(31)다. 니퍼트의 프로필상 신장은 203cm, 여기에 팔길이까지 더하면 그 높이는 250cm를 훌쩍 넘는다. 니퍼트가 던지는 공이 무서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2층에서 아래로 던지는 듯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니퍼트가 큰 키로 덕을 봤다. 투구가 아닌 수비에서였다. 24일 사직구장에서 가진 롯데와의 경기에서 니퍼트는 선발로 등판, 6회까지 롯데 타선을 3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봉쇄했다. 하지만 니퍼트는 0-0으로 맞선 7회말 선두타자 홍성흔에게 볼넷을 허용, 이날 경기 처음으로 선두타자에 출루를 허용했다.

다음 타자는 박종윤, 팽팽한 투수전이었기에 번트 작전이 나올 타이밍이었다. 박종윤은 예상대로 번트 자세를 취했고, 니퍼트의 초구는 볼이 선언됐다. 여기서 롯데 벤치의 작전이 바뀌었다. 니퍼트의 2구가 들어오자 번트 자세를 취하고 있던 박종윤은 갑자기 강공으로 전환했다.
박종윤의 타구는 그라운드에 한 번 강하게 바운드 된 후 니퍼트의 왼쪽으로 향했다. 타구 속도가 빨랐고 또한 바운드가 컸기에 결코 처리하기 쉽지 않았던 타구, 하지만 니퍼트는 투구 후 수비동작에 들어가는 기본을 잊지 않았고, 힘차게 뻗은 왼손에 박종윤의 타구가 들어왔다. 니퍼트의 큰 키가 아니었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타구였다.
이어 니퍼트는 침착하게 공을 2루로 송구, 1-6-3 병살타를 완성했다. 0-0으로 팽팽한 투수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니퍼트의 이 수비 하나가 결정적이었다. 결국 이 기회를 마지막으로 롯데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명도 출루에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두산은 위기 뒤 찾아온 한 번의 기회를 살렸다. 9회 1사 2루에서 최주환의 중전안타 때 대주자 허경민이 홈에서 아웃됐지만 최재훈의 결승 적시 2루타에 힘입어 1-0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렇게 팽팽한 경기에서는 작은 수비가 승패를 가른다. 비록 니퍼트는 7회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가 시즌 12승을 거두는 데는 실패했지만 작은 수비 하나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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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백승철 기자,baik@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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