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세대의 불안정하고 어두운 면을 패션으로 재밌고 가볍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컨셉코리아 2012’에서 26살의 어린나이로 ‘최연소 참가자’란 타이틀을 얻은 의상디자이너 계한희. 올해 처음으로 컨셉코리아와 인연을 맺은 그를 패션의 메카 동대문에서 직접 만났다.
컨셉코리아는 한국의 패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글로벌 패션 프로젝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대구광역시,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후원하며, 오는 9월 여섯 번째 S/S 컬렉션을 미국 뉴욕에서 맞이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쓰이던 다섯 가지 기본색 ‘오방색(五方色)’ 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을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닌 5명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5명의 디자이너들은 각각 오방색 중 하나를 무대 배경에 사용하게 된다.
인터뷰는 서울 동대문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 쇼룸에서 진행됐다. 눈두덩이를 검게 칠한 스모키 메이크업에 블랙진을 멋지게 소화한 디자이너 계한희가 수줍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아무래도 컨셉코리아에서 그가 보여 줄 배경은 ‘검정’일듯 싶다.
“이번 컬렉션에서 저의 배경이 될 색상은 ‘검은색’ 입니다. 검은색은 흰색 못지않게 가장 바탕으로 쓰기 좋은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의상이 가진 색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여러 톤의 의상이 나와도 ‘안전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선택했습니다.”
▲ 컨셉코리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

가장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 하지만, 기자는 디자이너 계한희의 도전정신에 대해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9년 의상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가부터 각종 패션 프로그램 출연, 아이돌 스타일링, 패션위크 등에서 의외로 그의 소식을 종종 접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엔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로 당당하게 해외진출을 하지 않는가.
“컨셉코리아에 선정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자리기에 ‘나는 된다’ 보다는 ‘내가 될까?’하는 의문스런 마음이었습니다.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어린 디자이너’라는 점을 강점이자 장점으로 오히려 새롭게 보여주겠다고. “10대, 20대의 불안정함, 억압, 학원폭력 등과 같은 제 또래의 어두운 면을 주제로 삼습니다. 하지만 가볍고 재미있게 교복을 연상케하는 ‘스쿨걸 룩’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컬러나 모티브 등을 귀띔해달라 요청했다. “주로 사용하게 될 컬러는 핫핑크, 골드, 군청색입니다. 타투프린트나 쪼개진 하트, 밧줄 등 펑키한 프린트가 아마 컬렉션의 주된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 ‘옷’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그의 주제를 듣고 ‘역시나 계한희 답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계한희의 지난 컬렉션을 살펴보면 다소 혁신적이고 과감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거대한 손이 고스란히 점퍼의 실루엣으로 등장하거나, 히피무드와 록 스타일이 교차하는 듯 어둡지만 유쾌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옷의 본래 목적은 ‘입는 것’인데 사람들이 직접 입기엔 부담스럽지 않을까.
“디자이너로 발돋움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아직은 ‘그런 옷’을 디자인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패션도 하나의 예술 장르라는 것이 제 의견이며, 저의 감성을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임팩트가 있는 혹은 이야기가 있는 옷으로 대중과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고스란하게 드러난 것이 브랜드 ‘카이(KYE)'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카이는 이야기가 있고, 위트가 담겨진 브랜드입니다. 카이의 로고는 직접 저의 손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제 손으로 만든 디자인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 동대문에서 느낀 ‘한국패션의 재미’

디자이너 계한희는 미국에서 태어나 긴 유학생활을 보내며 영국 패션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했다. 계한희에게 ‘한국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은 어떤 의미일까.
“미국 국적을 포기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이상하게 외국생활을 할수록 우리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애국심이 커졌습니다. 또, 국내 패션의 흐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동대문’이란 곳의 활기찬 시스템에 반했습니다. 하루하루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이곳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그의 옷은 한국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흔히 한국적인 디자인하면 전통적인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정말 한국적인 스타일인가?’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현재의 한국, 다양성이 있는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디자이너로서 외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고 싶다고. “유행을 좇는 디자이너 보다는 좋은 아카이브를 가진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그의 이런 포부는 한국화를 전공한 어머니의 생각까지 변화를 줬다. “처음 제가 패션을 한다고 했을 때 ‘그런 저급한 것을’이라며 반신반의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저의 가장 큰 버팀목과 지원군으로 저를 응원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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