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화 감독 3년, 한화의 희망과 좌절의 시간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2.08.28 07: 16

짧지도 길지도 않은 3년. 희망과 좌절의 시간이었다.
한화가 28일 한대화(52)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지난 2009년 9월 한화의 제8대 사령탑으로 취임하며 '고향' 대전으로 돌아온 한대화 감독은 그러나 3년의 계약기간 만료를 눈앞에 두고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2010년 부임 첫 해 8위에 그쳤지만 지난해 공동 6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보인 한대화호는 그러나 올해 8위로 떨어지며 아쉽게 끝맺음했다. 3년 통산 371경기 147승218패6무 승률 4할3리.
▲ 시작부터 거듭된 불운

2009시즌 종료 후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한 한 감독은 그러나 시작부터 불운이 닥쳤다. 간판 타자 김태균과 이범호가 나란히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했고, 마무리 브래드 토마스도 미국으로 건너갔다. 시작부터 한 감독은 차포를 떼고 맨몸으로 맞서야 했다. 그렇다고 좌절할 수는 없었다. 리빌딩을 목표로 한 팀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김태완·최진행·송광민·정현석 등을 리빌딩 전면에 세웠다.
그러나 뜻하지 하지 불운은 첫 해 시즌 중에도 찾아왔다. 주전 3루수로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던 송광민이 갑작스럽게 군입대했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인선수 농사도 실패했다. 첫 해부터 8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애초부터 비벼볼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32홈런을 터뜨린 거포 최진행을 발굴한 게 소득이었다. 하지만 김태완·정현석도 시즌 후 입대했고, 마땅한 전력보강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정타는 이범호(KIA)였다.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전력 외로 분류된 이범호가 국내 복귀를 고려했다. 이미 시즌 중에도 이범호의 필요성을 강조한 한 감독은 그의 국내 복귀 고려에 반색했다. 그러나 한화는 10년을 뛴 프랜차이즈 스타를 단돈 몇 푼으로 잡지 못한 채 그의 KIA행을 넋놓고 지켜봐야 했다.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선수였기에 한 감독의 아쉬움은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 극적인 반전과 야왕 칭호
2년째가 된 2011년도 쉽지 않았다. 개막 한 달간 6승16패1무로 최악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바로 그 이후부터 반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선수 카림 가르시아와 데니 바티스타가 합류하며 중심타선과 뒷문이 보강됐고, 기존의 국내선수들 역시 으쌰으쌰 하기 시작했다. 역대 최다 11차례 끝내기 승리의 주인공이 되며, 드라마보다 짜릿한 시즌을 보냈다. 공동 6위로 마쳤지만 4강급 성적을 낸 것처럼 팬들은 환호했다.
한대화 감독이 부임 이후 지도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승부처에서 놀라운 대타 성공률, 잡을 경기는 확실히 잡는 과감한 경기운용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팬들은 한 감독에게 '야왕'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1위팀도 아니고 상위팀도 아니지만 팬들은 재미있고 짜릿한 경기를 펼치는 한 감독에게 최고의 별명을 선사했다.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도 이렇게 하위팀에 뜨거운 환호를 보낸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 감독은 오히려 '야왕'이라는 별명에 더욱 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하위팀 감독이 무슨 야왕인가. 앞으로 더 잘 해달라는 의미로 알겠다"고 했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시즌을 마친 한화는 비시즌 동안 박찬호·김태균·송신영을 대거 영입하며 부푼 꿈을 키웠다. 구단에서는 4강을 넘어 우승을 이야기했다. 한 감독은 애써 "즐기며 해보자"고 선수들을 독려했지만 시작 전부터 어깨는 무거워져 있었다.
▲ 총체적 난국과 비극적 결말
2012년은 시작부터 꼬였다. 대전구장 리모델링 문제로 개막 한 달간 청주구장에서 경기를 해야 했다. 한 감독은 개막전 초유의 감독 퇴장이라는 불명예를 썼다. 시즌 시작부터 8위로 출발해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공수주 총체적 난국 그 자체였다. 선발진은 류현진·박찬호를 제외하면 모두 낙마했고, 4번타자 김태균이 고군분투한 팀 타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숙한 수비와 주루는 뒷목을 잡게 했다.
한 감독은 답답했다. 하지만 선수들을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 선수들을 혼내면 역효과만 난다. 어떻게든 스스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쌓여가는건 패배이고 늘어나는 건 스트레스였다. 한 감독은 남들이 보이지 않는 감독실에서 탁자의 유리를 깨는 것으로 속앓이했다. "맨날 꼴찌 탈출하려고 야구하고 있으니…"라며 씁쓸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한 감독은 부임기간 중 직접 발로 뛰며 타팀 감독들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방출 리스트에 오른 선수 중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남겼다. 연봉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에는 선수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낸 적도 있었다. 구단이 해야 할 일을 감독이 대신했지만 외국인선수까지는 한 감독이 직접 할 수는 없었다. 결과는 또 최하위였고 시즌 28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경질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었다. 한 감독은 "누구를 탓하겠나.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다. 야구를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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