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의 열기에 젖어 온 나라가 축제의 장이 됐다.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얼싸 안고 “짝짝짝짝짝, 대~한민국!”을 외쳤던 그 때 이제 막 어른이 된 KK(본명 김규완)는 자신의 인생을 축제로 만들어 줄 힙합과 만났다.
그리고 2012년, 사람들은 2002년의 열기가 수그러든 가슴으로 매일을 마주하지만 KK는 10년 전의 그 열정과 흥분을 안고서 자신의 첫 데뷔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다. “아휴, 엄청 좋네요.” 첫 번째 싱글 ‘스탠드 바이(Stand By)를 선보인 KK의 솔직담백한 소감이었다.
KK는 2008년 배치기의 3집 앨범 ‘아웃 오브 콘트롤(Out of Control)’의 수록곡 ‘스킬 레이스(Skill Race)’를 통해 작곡가로 데뷔했다. 그는 “‘내 노래가 들어줄 만은 하구나’라는 작은 감동으로 더욱 음악 활동에 매진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후 KK는 MC스나이퍼, 아웃사이더, LMNOP, 일리닛 등의 앨범에 작곡∙작사가이자 사운드 엔지니어링, 때로는 피처링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자작곡이 가능한 실력파 래퍼 KK, 그에겐 가수로서 치명적인 상처를 하나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 오른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그는 남은 한 쪽 귀에 의지한 채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다.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도 저는 한 쪽 귀가 안 들리는 상황이었어요. 양 쪽 귀로 소리를 들은 건 6학년 때가 끝이었죠. 중이염이 심각했거든요. 여러 번 수술을 받았고 결국 귀 안을 다 들어냈어요. 한 쪽으로만 듣는 일에 익숙해졌는지 이게 장애라고 생각 못했어요. 그러다 모니터링 할 때면 가끔 불편해요. 저는 스피커를 한 쪽에 몰아 놓고 들어야 하거든요.”

음악을 하기 전 KK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아주대학교 전자공학부에 재학 중이던 그는 힙합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변화를 맞이했다. 결국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하고 서울재즈아카데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청력을 잃게 되면서 군 면제를 받았어요. 부모님께서는 면제가 됐으니 얼른 자리를 잡기 원하셨죠. 하지만 저는 시간을 번 만큼 음악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랩을 만나서 음악을 하겠다는 결심이 선 게 아니고 작곡을 하면서 빠지게 됐어요. 휴학까지 하고 나니까 부모님께서 반대를 심하게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제가 잘하면 부모님께서도 인정해주실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어요.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공부할 생각 없냐면서 아쉬워하시지만요.(웃음)”
KK가 하는 랩은 조금 다르다. 단어 하나하나에 음을 넣어 노래하듯 랩을 한다. 일명 멜로디랩이 KK가 가진 비장의 무기다. 멜로디에 취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랩이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가사전달력만큼은 최고를 자부한다.
“랩이라고 하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들 많으시잖아요. 저는 음악답게 들리는 힙합이 하고 싶어요. 마니아적인 힙합보다는 부모님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가사 전달이거든요. 공연에서나 음원에서나 제가 뭐라고 하는지 들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이승환 선배님이거든요. 그 분처럼 사람 감성을 어루만이지는 노래, 앞으로 들려 드리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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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별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