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봉을 놓는 감독은 대개 은막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 28일 대전구장에서 한화 감독으로 마지막 날을 보낸 한대화(52) 전 감독의 퇴진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이미 이날 새벽 한 감독의 퇴진 소식이 전해지고, 오전에 공식 발표되며 일찌감치 만천하에 알려졌다. 시즌중 갑작스럽게 물러나게 된 한 감독은 3년간 정을 나눈 선수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감독실에 있는 개인 짐도 빼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 감독이 경기장 오는 시간이 알려진 게 문제였다. 취재진은 경기장 입구에서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당초 예정보다 20여분 늦게 사복 차림으로 도착한 한 감독은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와 마이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한 감독은 굳게 입을 다문 채 클럽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클럽하우스 브리핑실에서 선수들을 만난 한 감독은 "나는 괜찮다. 너희들은 앞으로 야구할 날이 많다. 특히 야수들은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고 돌아섰다. 이어 감독실의 짐이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큰 짐가방 3개와 작은 짐가방 하나 그리고 사진 액자와 방망이까지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구단 직원들의 손에 급히 옮겨졌다.
취재진이 장사진을 쳐놓고 기다리고 있자 한 감독은 잠깐 나와 "팬들께 죄송하다. 시즌 중간에 이렇게 된 건 내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겠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이어 질문이 쏟아지자 한 감독은 애써 웃는낯으로 "자, 이제 됐습니다"라며 두 손을 들어 양해를 구한 뒤 급하게 자리를 떠나야 했다.
구단에서는 전임 감독에 대한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무방비로 달갑지 않은 플래시 세례를 받도록 방치했다. 성적을 떠나 3년간 팀을 위해 애쓴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최소한의 통제와 정리로 전임 감독의 마지막 출근길이라도 배려해야 했다. 퇴진을 통보하는 과정부터 마지막 날까지 한화 구단의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비단 한화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SK에서 중도 퇴진한 김성근 감독은 경기장에 도착한 뒤 감독실에서 단장에게 직접 해임 통보를 받아야 했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3회 우승을 차지한 감독에 대한 예의는 눈꼽 만큼도 없었다. 롯데도 2010시즌 종료 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만찬 자리에 초대하지 않은 채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전화 한 통으로 끝맺음했다.
감독이란 한 팀의 수장이다. 설령 팀을 떠나다손 치더라도 선수단을 대표하는 얼굴이고 리더였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떠나는 감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없이 프로야구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불성설이다. 그들 스스로 프로야구라는 사업의 권위에 먹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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