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인상적인 감독대행 데뷔전이 있었을까. 전혀 초보답지 않았다.
한화 한용덕(47) 감독대행이 초보답지 않은 과감한 경기운용으로 데뷔전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한용덕 감독대행이 이끈 한화는 지난 29일 대전 넥센전에서 0-4로 뒤진 경기를 7-6으로 뒤집는 저력을 발휘하며 4연패를 끊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한대화 전 감독의 감독석 의자를 비워둔 채 서서 경기를 지휘하며 전관예우한 한 대행은 데뷔전부터 과감한 결단력과 뚝심으로 달라진 한화의 모습을 보여줬다.
▲ 번트 없는 자율권

감독대행 첫 날 한 대행은 덕아웃에도 앉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첫 날에는 너무 경황이 없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어제(28일) 태풍으로 경기가 취소된 덕분에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루 동안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한 대행은 "그동안 기회가 많지 않았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며 "코치 생활을 하며 느낀건 작전을 많이 걸면 좋을게 없다는 점이었다. 선수들이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유도하겠다"고 자신의 야구 철학도 드러냈다.
이날 내야수 한윤섭은 시즌 처음 주전 2루수 선발 출장했고, 포수 이준수는 5번째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오재필도 2번 타순에 전진 배치. 주목해야 할 건 '선수들에게 맡긴다'는 점이었다. 0-2로 뒤진 2회 무사 1·2루 한윤섭 타석에서 강공으로 갔다. 한윤섭은 유격수 앞 병살타로 물러나며 찬스가 끊겼다. 하지만 바로 다음 이닝이었던 3회 무사 1루 이대수 타석에서도 강공으로 승부했다. 결과는 또 병살타. 그럼에도 한 대행은 꿈쩍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주고 맡겼다. 3개의 도루가 나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 과감한 투수 운용
이날 한화는 1회부터 강정호에게 좌월 투런 홈런을 맞고, 5회에도 실책성 플레이와 폭투가 겹치며 2실점했다. 특히 선발 데니 바티스타는 이성열 타석에서만 2개의 폭투를 범하며 급격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성열마저 볼넷으로 출루시키며 2사 1·2루 위기를 초래했다. 스코어는 0-4. 한 대행은 과감하게 바티스타를 강판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총 투구수 88개. 더 버틸 수 있었지만 여기서 점수를 더 주면 승부의 추가 넘어간다는 판단이었다. 선발을 무리하게 끌고 가다 흐름을 내주는 패턴을 반복하지 않았다.
좌완 윤근영을 선택한 것도 포인트였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이날 경기 선발 차례였던 윤근영은 태풍으로 경기가 취소돼 로테이션이 밀렸고 다시 불펜에서 대기했다. 한 대행은 "홈경기에 많은 비중을 둘 것이다. 홈팬들 앞에서 최대한 이기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로테이션을 가져갈 것"이라 말했다. 30일 대전 경기에 에이스 류현진을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서 윤근영을 이날 중간으로 돌렸고 흐름이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차단하는 역할을 맡겼다. 윤근영은 대타 송지만을 삼진 처리하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윤근영-송창식-안승민으로 이어지는 불펜 운용도 매끄러웠다.
▲ 결정적 대타 작전
한 대행은 데뷔전에서 베테랑 좌타자 장성호를 선발 라인업에서 뺐다. "상대 선발이 좌완이고, 쉬게 해주는 차원"이라는 설명. 하지만 5회 3-4로 추격한 2사 만루에서 넥센 외국인 좌완 앤디 밴 헤켄이 강판되고, 사이드암 한현희가 투입되자 장성호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한 대행이 지휘봉을 잡고 처음으로 꺼내든 대타 카드. 신인 사이드암 투수를 상대로 한 베테랑 좌타자는 성공 확률이 높았다. 장성호는 한현희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6구째 가운데 몰린 직구를 놓치지 않고 중앙 펜스 상단을 직접 맞히는 주자일소 3타점 싹쓸이 2루타를 터뜨렸다.
결국 이게 이날 경기 승부를 가른 역전 결승타가 됐다. 결정적인 순간 아껴둔 대타 기용이 완벽하게 적중하며 승부의 물줄기를 한화 쪽으로 가져오는 한 수가 됐다. 한화는 4점차 열세를 극복하고 한 대행의 데뷔전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한 대행은 "선수들이 끝까지 이기려 하는 모습을 봤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날 승리에 의미를 뒀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27경기. 한 대행은 "지금 우리팀에게 7~8위는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팀 재건을 위해 미래를 볼 수 있는 운용을 하겠다. 지더라도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경기를 하겠다"고 밝혔다. 전혀 초보답지 않은 한 대행의 과감한 결단력과 뚝심이 한화를 빠르게 추스르고 있다.
waw@osen.co.kr

대전=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