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와 한용덕. 여러모로 많이 닮아있다.
한화는 2008년부터 가을야구를 구경꾼 신세로 바라보고 있다. 올해도 물건너간 상황. 여기에 최근 4년 사이 3번째 최하위 자리가 유력하다. 한 때 포스트시즌을 기본으로 보장한 팀이 이제는 대표적인 하위팀이 된 것이다. 지난 28일 한대화 감독의 갑작스런 중도 퇴진으로 팀 분위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남은 시즌 무너진 한화를 한용덕(47) 감독대행이 이끌게 됐다. 그는 "지금 우리팀은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다. 나도 선수 시절 바닥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지금의 한화처럼 끝없는 나락에 빠진 암울한 시절이 있었다.
한용덕 대행은 1985년 1월 왼쪽 무릎 부상을 입은 후 동아대 1학년 때 중퇴하고 야구를 관뒀다. 그의 나이 스무살 때 일이었다. 한 대행은 "야구를 그만둔 뒤 3개월 정도 놀았다. 그런데 마당쇠 스타일이다 보니 노는 게 싫더라. 그때부터 온갖 일을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8.5톤 트럭 운전수 조수로 일했고, 리어카를 끌고 집집마다 전화기 테스트를 하기도 했으며, 아예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뒤 야구에 대한 의욕이 솟았고, 천악 북일고 시절 은사였던 김영덕 감독이 이끄는 빙그레에 배팅볼 투수로 그라운드 돌아왔다.

3개월간 배팅볼 투수로 예사롭지 않은 가능성을 보였고, 연습생으로 1988년 빙그레 유니폼을 입었다. 3년차가 된 1990년 시즌을 앞두고 일본 전지훈련에서 일본인 인스트럭터 지도를 받은 뒤 A급 투수 올라섰다. 1990년 13승을 올렸고, 1991년 17승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93년 10승, 1994년 16승으로 꾸준히 활약했지만 1994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에 발목이 잡혔다. 한 대행은 "젊은 나이에 객기를 부렸다. 가족들이 모두 다칠 정도로 큰 사고였다. 이후 나도 내리막길을 탔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10년간 선수생활을 더한 한 대행은 통산 482경기 120승118패24세이브 평균자책점 3.54 기록했다. 2080이닝을 던지며 삼진 1341개. 완봉 16경기, 완투 60경기. 역대 통산 이닝 5위, 탈삼진 7위, 승리 11위, 완투 12위, 완봉승 공동 7위에 랭크돼 있다. 포기하지 않고 야구에 매달렸고, 역대 통산 기록 곳곳에 이름을 올렸다. 2004년 끝으로 은퇴한 뒤 구단 스카우트를 거치며 2006년부터 투수코치로 1·2군·재활군을 끊임없이 오갔다. 올해만 해도 불펜코치-수석코치-감독대행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한 대행은 "난 선수 시절 바닥에서 시작했다. 코치로도 1·2군 등을 수시로 옮겨다니며 굴곡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고난의 행보가 그를 더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선수 시절 앞만 보고 달리며 그의 표현대로 '객기'도 부렸지만 지도자가 돼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고 선수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팀도 이제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다. 떨어질 데가 없는데 뭐가 무섭겠나. 지금 팀을 맡게된 게 오히려 더 편하다"며 "요즘 '끝났다'는 분위기가 보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 하나에 승부가 갈리는 것이 야구다. 9회 경기가 끝날 때까지 무의미하게 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다. 질 땐 지더라도 납득이 가게끔 해야 한다. 금방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한화의 미래가 없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 야생의 잡초처럼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맞선 한용덕 감독대행. 위기의 한화를 추스를 수 있는 적임자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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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