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라는 말이 있다. 전직 관리에 대한 예우라는 뜻이다. 한화 한용덕(47) 감독대행이 보여준 모습은 전관예우 그 자체였다.
지난 28일 한화는 한대화 감독을 전격퇴진시켰다. 수석코치로 있던 한용덕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감독대행 데뷔전이었던 29일 대전 넥센전. 한용덕 감독대행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선 채로 지휘했다. 한대화 감독이 늘 착석해있던 감독 의자에는 앉지 않았다.
넥센과의 홈경기가 우천 연기된 30일 대전구장. 한용덕 대행은 전관예우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남은 기간에도 절대 의자에 앉지 않을 것이다. 나는 원래 앉아있는 습관이 안 돼 있다. 계속 서서 지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옆에서 보좌한 전임 한대화 감독에 대한 예의의 의미. 한 대행은 감독대행 첫 날부터 "감독님께 너무 죄송하다. 나도 잘한 게 없다"며 고개를 숙인 바 있다.

감독대행이지만 한 팀의 수장이 된 만큼 어색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표정 관리였다. 한 대행은 "평소 표정이 없는 편인데 나도 모르게 웃는 모습이 잡혔더라. 선수들에게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는데 (김)태균이가 '너무 긴장하신 것 아니냐'고 말하더라. 앞으로는 표정 관리를 좀 해야겠다"며 웃었다. 이날 한화 덕아웃에서는 고동진과 이여상 등 중간급 선수들이 목청껏 소리내며 분위기를 북돋았다. 5회 대타로 교체돼 경기에 빠진 이여상은 신경현이 타석을 마치고 포수 준비하는 공수교대 시간에 직접 투수의 공을 받아주기도 했다.
선수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한 대행은 대전구장 라커룸 내 웨이트장에서 운동을 했다. 그러나 몇몇 선수들이 "꼭 감시하시는 것 같다"며 농담 섞인 불편함을 나타냈고, 한 대행은 운동을 멈추고 돌아서야 했다. "나도 지금 이 자리가 낯설다. 생각지도 않게 이렇게 됐다"는 것이 한 대행의 말. 하지만 그는 "코치 때부터 1군과 2군을 오르내렸다. 코치들도 2군에 내려가면 선수들과 같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데뷔전 승리도 그랬다. 번트를 일절 대지 않았고, 선발 투수를 한 박자 빠르게 교체했으며 결정적인 순간 대타를 기용해 승부를 바꿨다. 그는 "도루 사인낸 것 외에는 작전이 없었다. 죽든 살든 선수들이 자신있게 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번트 유혹이 있었지만 선수들에게 칠 수 있는 기회와 경험을 주고 싶었다. 바티스타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대량 득점이 필요했다. 3회 끝나고 미팅을 했는데 선수들에게 부담없이 자신있게 하기를 주문했는데 운이 좋았다"며 "바티스타의 제구가 흔들렸기 때문에 더 끌고가다가는 점수가 벌어지고, 따라갈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찍 바꿨다. 대타 기용도 왼손 타자로 장성호와 연경흠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상대 투수가 신인이기 때문에 압박하기 위해서는 베테랑 장성호가 좋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데뷔전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한 만큼 스타트는 좋게 끊었다. 한 대행은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낫아웃 삼진을 당하고도 1루로 전력 질주하고, 상대 실책 때 한 베이스라도 더 가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박찬호 장성호 김태균 등 분위기를 잘 만들어준 고참 선수들에게 고맙다"며 "어제 관중석을 보고 처음에는 무관중 운동을 하나 싶었다. (이날 대전구장에는 2175명의 관중이 찾았는데 한화의 시즌 최소 홈관중이었다) 팬들이 마음을 돌리면 우리는 없다. 집에 돌아간 뒤 경기를 다시 봤는데 외야석에 어린이 관중들이 비가 오는데도 춤을 춰가며 응원하더라. 그런 모습을 보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도 같은 마음"이라는 말로 남은 기간 선전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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