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에 곽 감독은 "'내가 어디갔었나?"라며 웃어보인다. 하지만 그도 분명 스스로가 초심으로 돌아갔음을 인정했다.
영화 '미운 오리 새끼'는 헌병대에 배치된 육방(6개월 방위) 낙만의 파란만장한 병영생활과 그보다 더 파란만장한 1987년 시절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낸 영화로 곽경택 감독의 10번째 작품이다. 곽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됐을까.
"강헌(대중음악평론가) 씨와 군대를 같이 했고 그 때 같이 기획을 했죠. 제가 바둑병, 이발병, 사진병 다 하는 잡병이었어요. 故 노무현 대통령 퇴임 쯤 386 세대들에 대한 향수를 그려보자 했어요. 제작비는 누가 낼까 했는데, 한 푼도 못 구해와가지고 내가 해 보려고 마음 먹었죠. 그렇게 오래 갖고 있다가 이번에 시기가 잘 맞아 떨어졌고 배우들도 장소도 '탁' 하고 나타났죠. 지금 아니면 못 찍는다는 마음으로 찍었습니다."

실제로 곽 감독이 이 작품을 처음 쓴 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무렵. 강헌 대중음악평론가가 하루는 "386세대의 상징적 인물이 대통령이 됐고, 여러 실수도 했지만 물러나는 모습이 너무 안 좋아서 속이 상한다. 너랑 나랑 같은 시대를 살았으니 그분을 기린다기보단 우리끼리 그 시절을 반추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써 봤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 전혀 투자가 안 돼 묵혀놓은 작품이다.
2012년, '미운 오리 새끼'는 드디어 세상의 빛을 봤다. 순제작비는 20억원 수준. 그나마 감독, 팀장급 스태프들은 개런티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실 제작비는 10억원 남짓이다. 그간 곽 감독의 영화와 비교했을 때 비교도 할 수 없는 제작비다. 250억원이 투입된 2005년작 '태풍'(2005)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던가.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좋은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군대 이야기고 방돌이가 주인공인데 내 시대 비슷한 사람도 아니고, 군대 경험도 없는 여성분들이 공감이 됐까 싶었죠. 그런데 좋아하서셔서 놀랐어요. 특히 20대 초반 친구들이 이런 걸 재밌다고 하니 깜짝 놀란 거지. 제일 놀랐던 것은 우리 딸이 문자메시지를 보낸 거에요. '아빠 영화라서가 아니라 여지껏 본 영화 중 제일 재미있었어'라고. 문자를 받고 "아빠 영화니까 그렇겠지"라고 답하긴 했는데,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우리 딸이 19살이거든요."
실제로 영화는 아들을 군대 보낸 어머니들 뿐 아니라 20~30대 젊은 여성 관객들을 울리고 웃긴다. 극장에서는 군대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그려지는 장면에서 웃음이 '빵빵' 터진다. 이를 본 곽 감독은 "야, 이건 웬 선물이냐 이랬어요. 속된 말로 '웬 떡이냐'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그 친구들(관객)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니 코믹적인 감각이 안 맞아서 썰렁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 했는데 웃어주시니 다행이죠. PD한테 '내가 먹히는 건가?' 이랬어요. 하하."
"(조)혜련이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아는 사람들한테 돌아가면서 '영화 어땠어요?'라고 물었더니 '곽경택이 돌아왔다' 이러더라고. 그 얘기 듣고 '내가 어디갔었는데?' 그랬어요. 하하. 하지만 데뷔할 때의 순수한 열정이 살아났고, 영화 자체의 화려함 보다는 꼭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소신의 열정이 되살아난 것은 사실이에요. 말그대로 초심이죠. 그렇다고 그 전작들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뭔가 사람이 살다보면 리셋(reset)되는 느낌이 있는데 이번에 그랬어요."
SBS '기적의 오디션'에 나왔던 배우들로 작품을 만들었다. 오달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신인들이다. 베테랑 감독으로서 신인들과 함께 촬영하는데 힘들지는 않았냐고 묻자 "물론 힘든 점이 있지만 그 만큼 재미도 좋았다. 그 친구들이 원숙미는 없지만 패기가 있다. 또 프로덕션 상황에 맞게 스케줄을 착착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라며 웃어보였다.
많은 오디션 참가자들 중 김준구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베짱이 좋고 뉴 페이스(new face)'란 점을 꼽았다.
"어느 모델이나 사람이 등장했을 때, 그 사람이 누구를 닮았으면 크기 힘들어요. 아무리 잘생겨도 소위 '짝퉁'으로 볼 위험이 크죠. 그래서 항상 새로운 얼굴들이 먹혀요. 준구는 좀 새롭더라고요. 어디서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어요. 뉴 페이스는 또 쓸데 없는 어깨의 힘이 안 들어가 있죠."

영화는 '깨알 같은' 군대 에피소드을 자랑한다. 중대장의 귀를 자르는 것이나, 시계를 보며 라면을 끓이는 장면 등 거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곽 감독은 "맞다. 실제 상사의 귀를 자른 적이 있다"라고 본인의 군대 시절을 회상했다.
"이발병일 당시, 상사의 이발을 하는데 가위가 뭔가 '슉' 하고 지나갔고, 앉아 계신 분이 '아!' 소리지르더라고요. 상황이 무서우면서도 웃겼어요. 핑크색 보자기 천을 덮고 있는데 '귀! 귀!' 이렇게 소리치고. 귀가 이만큼 너덜너덜해져서 피가 쑥 나오더라거요. 갑자기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머리를 계속 잘라야 할지, 보부터 벗겨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그야말로 멘붕이었죠."
영화 속 스스로를 '미운 오리 새끼'로 규정짓는 낙만은 소집 해제 이후 엄마가 계신 미국으로 건너가 지긋지긋한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꿈이다. 그런 낙만이 억울하게 영창으로 끌러온 행자(문원주)를 때리는 장면, 그리고 반대로 그런 행자를 감싸는 장면이 영화의 '키 포인트'로 꼽는 관객들이 많다. 곽 감독은 이에 수긍하면서 "세상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래도 좋은 가정,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 세상을 덜 억울하게 살았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낙만도 중대장(조지훈)한테 밉보여서 나름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억울한 사람이 훨씬 많다. 스스로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이 영화가 버텨 나가는 재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영화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전했다.
영화 속 故 노무현 대통령의 육성도 인상적이다. 이에 대해 곽 감독은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라며 "유일하게 본인 스스로의 생명을 끊은 분인데, 업적은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가장 양심적인 대통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본인 욕심이 가장 없었고, 자존심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런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움과 존경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육성 사용 허락은 고인의 가족 분들이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 해주시더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가식없는 어조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연기자들이 '기적처럼' 곽경택 감독을 통해 자신의 꿈에 한 발짝 크게 다가섰다는 것도 의미있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조곤조곤 펼쳐낸 곽 감독이 역시 그냥 스타 감독이 아니었음을 톱스타 하나 없는 이 작은 영화를 통해 여실히 보여줬다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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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