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soul을 만나다] '도수코3' 한상혁, "내 심사 기준은 진정성"
OSEN 최준범 기자
발행 2012.09.03 11: 59

“도수코3에 많이 안 나오는 것도, 캐릭터가 미약하다는 것도 다 알아요.(웃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패션 디자이너 한상혁. 그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모델을 뽑는 프로그램인 온스타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3(이하 도수코3)’에서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탑 모델을 선별하기 위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수코3 속 한상혁 심사위원의 모습을 얼른 보면 어중간하게 느껴진다. 그는 심사위원 이혜주 'W' 편집장과 모델 장윤주, 멘토인 스타일리스트 한혜연만큼 입체적인 방송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조근조근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는 한상혁에게 은근한 개성을 묻힌다. 어느새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어깨에 재킷을 걸치는 스타일링 또한 그의 개성을 더욱 짙게 만든다.
이런 그를 매회 방송에선 볼 수가 없는 것이 은근히 아쉬운 차였다. 기자는 직접 그가 일하는 종로의 한 사무실에서 오디오를 통하지 않고 그의 나긋나긋하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를 라이브(live)로 들을 수 있었다.
▲ 캐릭터는 없지만, 명확한 기준은 있다!
도수코 3 제작진과 시청자는 심사위원에게 강렬하고 명확한 캐릭터를 요구한다. 앞서 말했듯이 한상혁 심사위원의 캐릭터는 그런 요구와 달리 다소 불분명한 편. 그러나 그의 심사 기준은 아주 명확하다.  
“나의 심사 기준은 패션에 대한 진정성과 패션을 대하는 태도다. 모델로서 본인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지, 그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 대한 애티튜드도 나만의 심사기준에 포함된다. 옷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본인이 어떻게 표현되고,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한 도전자의 경우, 포즈부터 눈빛 표현능력까지 다른 도전자와 월등한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그를 뽑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한상혁 디자이너는 질문을 하자마자 본인만의 구체적인 심사 기준을 열심히 나열했다. 짐작컨대 꽤 오랫동안 생각한 것 같았다. 이러한 심사 기준을 언제부터 생각했을까.   
“처음 ‘도수코3’ 심사위원에 캐스팅됐을 때부터 생각했다. 디자이너가 얘기해 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며칠 동안, 내가 제일 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생각 해보니 앞서 언급한 기준점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그는 심사 기준에 있어 확실한 차별화가 있기를 바랐다. 막강한 캐릭터 구축보다도 이러한 심사 기준을 가지는 것이 심사위원의 임무라고 판단한 것. 매회 방송에서 그를 만날 수는 없지만, 그의 심사 기준은 '도수코3'의 한 순간 한 순간을 결정짓고 있다.
 
▲ 스토리를 가진 옷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상혁 디자이너는 현재 제일모직 남성 캐주얼 브랜드 MVI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한상혁에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타이틀은 어떤 의미일까.  
“옷에만 전념하는 디자이너와 달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영화감독과도 같다. 영화감독이 배우들과 각종 촬영 스태프들을 지휘해 하나의 영화를 만들 듯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마찬가지다. 각 분야를 소통시키고, 핸들링해 하나의 이야기를 펼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펼치는 직업’이라고 표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상혁. 그의 옷에 이야기가 묻어 있다는 패션계의 평가와 함께 ‘스토리 텔러’라는 별명도 갖게 됐다. 그렇다면 세상에 떠도는 많은 이야기 중 옷에 첨가할 이야기의 소재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궁금하다. 
“해마다 내가 겪었던 상황에서 비롯된다. 즐겁고 힘들었던 얘기, 화나고 속상했던 얘기, 아프고 상처받은 얘기 중에서 옷에 첨가할 이야기의 소재거리를 찾는다.”
옷에 녹일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그래서 시각을 많이 열어 놓으려고 노력하고, 무엇을 보고 느끼든 간에 꼭 패션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려고 한다.”
▲ “내 칼럼을 읽고, 귀가 뜨였으면 했다” 
 
‘스토리 텔러’라는 별명에 걸맞게 한상혁 디자이너는 동아일보가 발행한 시사잡지 ‘주간 동아’에 패션칼럼을 연재했던 경력이 있다. 그의 칼럼 중 하나를 읽어보니 이러한 문구가 있었다.
“옷을 만드는 것보다 그 옷을 입는 사람의 행동과 태도, 즉 뉘앙스를 디자이너의 취향으로 바꿔주는 게 더 보람되고 즐겁다.”
“슈트 드라이클리닝 이후 이틀 정도 냄새가 빠지도록 걸어두는 태도, 심지가 두꺼운 깨끗한 셔츠 칼라와 타이를 정성껏 단단히 매는 태도, 헤어용품으로 간단히 머리를 정돈하는 태도, 가방에 안경집을 넣고 다니는 태도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단순히 옷을 입는 것보다 옷에 대한 태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칼럼에도 이같은 생각을 하나하나 담았다.
한상혁 디자이너는 꾸준한 칼럼 연재를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분명한 '기획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이 칼럼은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덫’이라고 할 수 있다.(웃음) 한번은 엠디 친구가 심심한 출근길에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채널을 추천해 우연히 듣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 라디오를 듣기 전 정치적 분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한상혁은 패션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듣고 나니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한마디로 정치적 귀가 트인 것이다. 내가 칼럼을 연재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이 같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큰 메시지를 던지는 것보다 내가 하나씩 던지는 패션 정보에 독자들을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내 귀가 트인 것처럼 말이다.(웃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자신의 귀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 트인 경험처럼, 한상혁은 패션에 관심없는 이들의 귀를 꾸준히 자극하는 패션인이 되고자 한다. 그는 올해 11월 '패션과 태도'를 다룬 책을 발간한다. 패션을 외면하려는 이들의 귀가 또 한 번 간지러울 듯하다.
junbeom@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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