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이)용찬이를 이 코치님이라고 부른다. 띠동갑 선수의 이야기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확실히 유연해진 것 같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선수였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파워피처로 살아왔고 메이저리거 시절에도 운이 없기는 했으나 쿠어스필드 완봉승 등 나름대로 족적을 남긴 투수였다. 그러나 패스트볼에 대한 고집 대신 돌아 들어가는 방법을 채택해 성공을 거뒀고 그 이후 그는 10년 이상 차이나는 후배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투수진의 맏형이 되었다. '써니' 김선우(35, 두산 베어스)의 경기력 회복에는 더욱 유연해진 사고가 함께 했다.
올 시즌 김선우는 24경기 5승 7패 평균자책점 4.62(4일 현재)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16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13의 호성적을 거뒀던 에이스의 성적표임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 그러나 슬럼프에 빠졌던 시즌 초반과 달리 후반기에는 7경기 2승 2패 평균자책점 3.13으로 호투 중이다.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 구위와 경기 운영 능력은 지난해 못지 않은 최근의 김선우다.

시즌 종료까지 다섯 번의 선발 등판이 예정된 김선우는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야 4년 연속 10승을 달성할 수 있다. "어렵지만 남은 시즌 긍정적인 자세로 나서겠다"라며 웃은 김선우는 지난 1일 문학 SK전에서 6이닝 6피안타 1실점으로 쾌투를 보여줬으나 계투진의 역전 허용으로 시즌 6승 기회를 놓쳤다. 1회 정근우에게 내준 선두타자 솔로포를 제외하고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김선우였다.
"열흘 만에 던졌던 만큼 힘도 있었고 포심 패스트볼이 좋아서 초구부터 편하게 포심을 던졌다. 그런데 그 공이 홈런으로 이어져서 '아, 아니구나'하는 생각으로 패턴을 빠르게 바꿨다. (이)용찬이가 볼 커버를 해주면서 조언해준 것도 있었고".
1977년생인 김선우와 빠른 1989년생인 이용찬의 야구 구력은 대략 11년 차이가 난다. 김선우가 고려대 2학년 시절이던 1997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할 때 이용찬은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었다. 띠동갑 차이가 나는 후배 이용찬이 김선우에게 해준 조언이 무엇일까.
"용찬이가 눈썰미가 좋아서 가끔 '이 코치님'이라고도 부른다.(웃음) 나는 원래 힘을 모아서 움츠렸다가 빠른 직구를 던지는 폼이 아니라 상체를 꼿꼿이 세워 던지는 스타일이다. 용찬이도 나와 비슷한 투구폼이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용찬이에게 내 투구폼에 대해 물어봤더니 힘을 모아 던지기보다 원래 던지던 것처럼 상체를 세우고 던져보라는 답이 나왔다".
과거 선동렬 KIA 감독의 현역 시절 투구폼처럼 힘을 응축했다가 던지는 것은 무릎 부상 전력의 김선우에게 좋은 투구폼이라고 보기 힘들다. 무릎을 구부린 채로 릴리스포인트까지 끌고 나오는 모습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신 김선우는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상체를 지탱하게 한 뒤 스리쿼터식 팔스윙을 보여줄 때 가장 좋은 공이 나온다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 이용찬의 조언은 그와 맞닿아있다.
사실 2009년까지의 김선우는 포심-투심-커터 등 패스트볼 구종이 주가 되는 빠른 투구 패턴을 고수했다. 또래 투수들에 비해 월등히 빠른 직구를 갖추고 있었던 만큼 아마추어 시절부터 파워피처로 살아왔고 메이저리그 시절에도 156km의 직구를 던졌던 김선우다. 자존심도 확실히 강했던 김선우였으나 국내 무대 첫 두 시즌에는 경기마다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고 김경문 전임 감독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힘겨웠던 2009년 말을 보낸 김선우는 이후 자신의 투구 패턴에 변화구종 비중을 높였고 그 결과는 2010시즌 13승, 2011년 16승으로 뛰어났다. 올해 불운한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선우지만 지난 2년 간 김선우의 투구는 '에이스'라는 수식어에 마침맞았다.
"3년 전부터 내 스스로도 야구 인생에 처음으로 큰 변화를 주었고 그 결과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지금은 띠동갑 후배의 이야기도 수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다른 후배들과도 질문이 왔을 때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고 자문을 구할 때는 주저 없이 묻고 깨달음을 구하는 김선우의 이야기였다.
타자의 방망이를 빨리 끌어내 범타 양산형 투구를 펼친다는 이전의 생각에는 변화를 주지 않은 김선우. 대신 과정론에서 우격다짐식 투구가 아닌 돌아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고 지금은 10년 이상 차이 나는 후배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유연한 맏형이 되었다. 후배의 조언을 묵살하지 않고 귀담아 들은 뒤 실천한 김선우는 투수진의 진정한 맏형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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